작년은 가수 장덕의 30주기였다. 친오빠와 듀오 ‘현이와 덕이’의 1985년 앨범이 바이닐(LP)로 다시 만들어졌고, 후배 뮤지션 레인보우 노트와 모트가 헌정 리메이크 노래를 발표했다. 장덕이 출연한 KBS 드라마 ‘구리반지’의 촬영지인 남이섬에는 노래비가 세워졌다. 장덕의 삶을 소재로 한 음악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2020년 고인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들이 속속 진행됐다.
곳곳에서 추모가 이어지는 배경은 명확하다. 장덕이 활동했던 1970~80년대에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극히 드물었다. 본인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여자 가수는 심수봉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 대중음악계에는 여자는 전문 작곡가에게 곡을 받아서 노래만 부르면 된다는 차별적 분위기가 짙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작곡을 시작한 영재 음악가 장덕은 자신과 ‘현이와 덕이’ 앨범의 대부분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며 억압과 편견을 시원하게 깼다. 70~80년대 가요계의 선구적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사 작곡은 본인의 작품에 국한되지 않았다. 77년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한 진미령의 ‘소녀와 가로등’을 비롯해 이은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국보자매 ‘백치미’, 이용식 ‘하나에서 또 하나’, 임병수 ‘사랑은 사랑대로 이별은 이별대로’ 등 여러 가수에게 곡을 줬다. 이 중 ‘소녀와 가로등’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꾸준히 리메이크돼 노래 경연 프로그램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이 두 작품만으로도 장덕의 곡이 대중을 매료하는 강한 힘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장덕의 노래는 스타일도 다채로웠다. 포크, 발라드, 어덜트 컨템퍼러리, 뉴웨이브, 디스코, 댄스 팝, 라틴 프리스타일 등 다양한 영역을 활보했다. 이렇게 많은 장르를 누빌 수 있었던 이유로 편곡자의 공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의 곡과 경쾌한 선율의 곡을 두루 능숙히 썼기에 표현하는 양식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었다. 더불어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님 떠난 후’ ‘예정된 시간을 위해’ 같은 대표작들은 귀에 잘 들리는 멜로디를 짓는 능력을 장덕이 보유했음을 일러 준다. 데뷔 이후 줄곧 장덕을 따라다닌 ‘천재 소녀’ 칭호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보컬도 괜찮았다. 목소리는 맑음과 날카로움이 공존했다. 덕분에 고음이 무척 후련하게 들렸다. 애절한 발라드에서는 그윽한 발성과 은은한 비브라토로 화자의 애타는 심정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초롱초롱한 눈빛처럼 발음이 또렷해 노래에는 자동으로 악센트가 깃들었다. 이 점이 장덕의 노래들이 한층 선명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장덕이 살아 있었다면 올해 이순을 맞이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이기에 이 걸출한 싱어송라이터를 찬미하고 기억하는 행사가 얼마간 계속되지 않을까 한다. 오는 17일에는 남이섬에서 ‘고 장덕 추모공연- 소녀와 가로등’이 열린다. 공연에는 양하영, 김범룡, 최성수, 레인보우 노트 등이 출연한다. 장덕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게는 추억을 나눌 좋은 자리가 될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