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데 기상 악화로 두 시간 동안 공항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순식간에 인파가 몰렸고, 거리두기를 시행하며 앉아야 하는 의자는 사람들을 다 수용하지 못했다. 나 역시 한참을 서 있다가 근처의 누군가가 일어나 겨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진득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찬스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리를 번갈아 꼬아가며 내내 앉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쾌거를 이루었다.
당연히 나처럼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앞자리에 앉은 부부의 대화는 언성이 높진 않았지만 짜증났다는 시그널을 연신 서로에게 보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아예 신발을 벗은 채 맨발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줄을 서기 위해 움직이는 그 몇 발자국 사이에도 성질 급한 사람들이 어찌나 새치기를 하던지 자꾸 내 차례가 뒤로 밀려났다.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여유로운 지금에 안도할 뿐이었다.
나 역시 저렇게 급한 사람의 입장이 돼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도착하면 바로 북토크를 하러 인천의 한 책방으로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비행기가 이번처럼 길게 지연돼 나는 어떻게든 더 빠른 비행기편을 찾아보려고 모든 비행사의 창구를 뛰어다니며 새치기를 한 적이 있다. 결국 북토크에는 한 시간을 늦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에 탑승해 자리에 앉았더니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긴 시간 기다리게 했다고,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그러더니 그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고 말했다. 그 항공사의 공식 엔딩 멘트였지만 기장은 그 말을 조금도 업무적으로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모두가 빵 터지며 화를 푸는 바람에 기내가 갑자기 따뜻해졌다. 그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좋은 하루를 보낸 것이 됐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