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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팬데믹 막은 ‘장관이 된 해커’

대만 디지털장관 오드리 탕이 지난해 5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音樂(음악)’ ‘創客(촹커·혁신 창업자)’ ‘旅遊(여행)’이라고 적힌 카드를 들어 보이며 청년들에게 이 세 가지를 꼭 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대만 민진당은 2016년 정권을 잡은 후 당시 35세이던 탕을 디지털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천재 프로그래머로 시빅 해커 활동을 해왔던 탕은 장관이 된 후 정부에 디지털 민주주의를 이식하며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스리체어스 제공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던 금태섭 전 의원은 ‘디지털부시장’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대만의 오드리 탕(Audrey Tang·唐鳳) 디지털장관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했다.

여성학자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1월 신문 칼럼에서 오드리 탕을 소개하고 “탕 장관의 혁신성은 국경을 넘어 쉽게 공유될 성격의 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교육개혁을 위한 아시아 교육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안 될까”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만의 코로나19 방역 모델을 전하는 기사에도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 오드리 탕이다. ‘마스크 지도 앱’을 통해 마스크 대란을 해결한 그는 T방역(대만식 방역)의 주역으로 꼽힌다.

‘대만을 바꾼 천재 해커’ ‘IQ 180의 30대 장관’ ‘트랜스젠더 장관’ 등으로 유명한 오드리 탕을 다룬 책이 나왔다. 기자 출신 저술가인 전병근씨가 인터뷰와 블로그 글, 기사, 동영상, 강연 등을 수집해서 쓴 ‘대만의 디지털 민주주의와 오드리 탕’은 그에 대한 국내 첫 책이다. 200페이지 안팎의 얇은 분량이지만 그가 왜 이토록 국제적인 관심을 받는지 알려주기엔 충분하다.

책은 ‘대만이 어떻게 혁신국가가 됐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배경에는 대만의 첫 인터넷 세대이자 민주화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가 있었다. 오드리 탕은 이 세대의 아이콘이다.

“이 모든 것은 2014년 3월에 시작됐다. 해바라기 운동(Sunflower Movement)에 참여한 학생들이 22일 동안 국회를 점거했던 바로 그때부터였다.”

당시 대만 집권 국민당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서비스업 분야로까지 확장하려 하자 학생과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며 입법원을 점거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한 이 사건으로 국민당은 협정을 중단했고, 2016년 1월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 정권에 결정타를 가한 해바라기 운동은 “오프라인 민주화 세력과 온라인 시빅 해커들이 공조해 성공시킨 무혈 혁명”이었다. 시민 개발자들인 시빅 해커들은 시위 상황을 알리고 토론을 조직하고 이를 실시간 중계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권을 잡은 민진당 정부는 젊은 해커들의 문제 해결 능력을 정부 내로 수용하기로 하고 이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당시 35세의 오드리 탕을 디지털장관으로 발탁했다. 대만 사상 첫 30대 장관이자 첫 트랜스젠더 장관이었다.

탕 장관의 등장은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대만발 혁명의 시작이 됐다. 그는 타이베이 시내 공원 인근에 PDIS(공공디지털혁신센터)라 이름을 붙인 집무실을 마련하고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국민청원 사이트를 만들고, 브이타이완(vTaiwan)을 비롯해 폴리스(Pol.is)와 조인(Join) 등 시민 참여와 숙의 민주주의를 위한 다양한 플랫폼을 개설했다. 대만은 브이타이완을 통해 새로운 법을 만들고, 폴리스를 통해 우버 분쟁을 해결한다.

국가 능력의 시험대인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대만 정부는 돋보였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 방역 모델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엔 탕 장관이 있었다.

저자는 오드리 탕의 흥미진진한 개인사와 독창적인 정책들을 충실히 전해주면서 그 바탕에 깔린 그의 생각과 태도를 분석하는 데도 주력한다.

시빅 해커는 탕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다. 15세 때 스타트업을 창업할 정도로 탁월한 프로그래머였던 탕은 32세에 모든 사업을 접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사회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시빅 해커의 길로 들어섰다. 정부 공식 사이트들의 일방향성과 비효율성을 개선한 대안적 사이트 고브제로(g0v)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정부 참여는 시빅 해커 활동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탕은 자신을 시민사회와 정부를 연결하는 중재자로 규정해왔다. 입각 후에도 이런 태도는 변함이 없다. 디지털 도구들을 이용해 시민들을 정치에 참여시키고 생각이 다른 시민들이 토론하도록 하고 시민과 정부가 소통하게 만드는 게 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와 시민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매우 인상적이다.

‘장관이 된 해커’로서 탕은 정부라는 플랫폼을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다. 시민 참여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라는 소프트웨어의 ‘버전 2.0’을 코딩하는 중이다. 저자는 “탕을 비롯한 시빅 해커들 사이에선 민주주의도 인터넷처럼 하나의 기술로 간주된다”며 “정부도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보고 누구든지 새로운 버전으로 시험해 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더 낫게 개선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탕의 실험은 디지털 기술이 정부를 혁신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가짜뉴스, 여론조작, 여론 양극화 등 디지털 기술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세계가 대만을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대만과 한국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고심한다. ‘민주화 이후’ 나아갈 방향을 찾는 한국에 대만의 디지털 민주주의는 매력적인 대안일 수 있다. 디지털 문화와 네트워크 연결성으로 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민주주의를 위한 실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 사이트가 대표적이고 서울시도 숙의 민주주의 플랫폼인 ‘민주주의서울’이나 청년들의 정책 참여를 보장하는 ‘청년청’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에 비하면 성과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추진세력의 차이다. 한국의 디지털 민주주의 실험에서 청년들은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 반면 대만에선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주도했다. 디지털 민주주의에서 온라인 세계의 문법이자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코드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드리 탕은 그야말로 코드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다.

대만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그 뒤를 잇는 Z세대를 합친 인구집단)가 정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MZ세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힌트를 제공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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