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삼단계는 무엇인가’라는 난센스 퀴즈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답을 하지 못했는데,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말도 안 되는 답에 모두 웃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난센스 퀴즈처럼 하나님의 일에도 분명한 순서가 있다.
1992년 중미지역인 벨리즈로 단기 선교를 갔을 때 일이다. 그곳 교도소에서 종일 복음을 전하고 다음 날 도시 중심에서 또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다가와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게 아닌가.
당황해하는 나에게 그는 자기가 어제까지 교도소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제 내 설교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너는 어제 나에게 설교했지만, 그 설교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흐느적거리며 사라졌다. 그때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그때 그 만남은 이후 목회에 적지 않은 도전을 줬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교도소에서 했던 설교가 썩 괜찮았다고 속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설교를 듣고 몇 사람은 감동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을 것이고,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자복했을 거라고 속으로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그 사람과 만남은 내가 얼마나 교만하며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인지 깨우쳐 줬다. 그제야 여러 신앙의 선배에게 들었던 영적 교훈이 떠올랐다.
‘주님의 사역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순서를 따라가라’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너무나 기본적인 교훈을 망각하고 행동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한 사람이라도 더 열매를 맺고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 자신만 채찍질했다. 그러다 보니 내 행동에 집착하느라 하나님의 일에서 순서를 그만 망각하고 말았다.
설교를 듣는 청중을 내 힘으로 감동시키려고 했을 뿐, 먼저 성령님을 의지해야 함을 놓치고 말았다. 청중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욕심과 부담 때문에 그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부족했음을 다시 깨닫게 됐다.
하나님께서 준비시키신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전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은 것도 회개했다. 또한 복음을 전하기 전 전도 대상자가 복음 앞에 마음의 문을 열게 해달라는 준비 기도가 필수라는 것도 다시 마음에 새겼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순서를 지키는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를 세우기 전 자신을 주님 앞에 바로 세워야 한다. 성도들을 세우는 데 주력하다가 정작 자신을 세우지 못해서 어려움을 만난 목회자를 종종 본다. 교회의 하나됨이 먼저이건만 교회 성장만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교회 분열이라는 아픔을 만난 교회도 있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성도가 직분을 받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그 성도가 바르게 훈련받는 것이 먼저다. 여러 가지 사역을 하는 것보다 그 사역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게 먼저다.
특히 우리의 기쁨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다. 세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 안에 복음이 차고 흘러넘쳐야 한다. 나에게 없는 것을 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정하신 순서를 어떤 경우에도 바꾸지 않으신다. 우리도 목회의 업적을 위해 목회의 우선순위를 바꿔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이 헛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순서에 따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순서에 따라 순종하며 걸어가다 보면 우리와 동행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우리의 우선순위가 되도록 하자. 그때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주님의 귀한 동역자가 될 것이다.
이성철 미국 달라스 중앙연합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