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1월 우방인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선물로 코로나19 백신 무상 제공을 약속했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기 20일 전이다. 그때 약속한 백신이 지난 2일 미얀마 양곤에 도착했다. 미얀마군 최고사령부는 중국산 백신을 전국 병원에 배포했다. 미얀마 주재 중국 대사관은 “양국 간 형제애를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미얀마 시민들은 “중국산 백신을 맞느니 코로나19에 걸려 죽겠다”며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미얀마에선 군정에 저항하는 의미로 의료진 수천명이 파업에 들어갔고 시민들은 백신 접종 보이콧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백신 물량 공세를 펴자 반중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백신을 지원한 중국은 정작 미얀마 군정에 대해선 내정이라는 이유로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에 대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 논의도 가로막았다. 국제사회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사이 미얀마에선 군경의 무차별 총격으로 700명 넘는 시민이 숨졌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코로나19 사태에 쿠데타까지 겹쳐 내년 미얀마 인구(약 5400만명)의 절반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글로벌 리더 국가’. 중국은 이런 모습을 그리며 백신 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선진국이 자국민 우선 접종에 주력한 것과 달리 중국은 백신이 부족한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집중 공략했다. 그 결과 백신 외교에서만큼은 중국이 미국에 앞섰다는 평가도 받았다. 물론 중국은 백신 외교란 표현을 먼저 쓰지 않았고 지금도 마뜩잖게 여긴다. 백신을 무기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는 의구심이 짙게 깔린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백신 지원에는 늘 ‘일대일로’가 따라붙는다. 미얀마 백신 무상 제공 때 중국 외교부는 만달레이 철도 연결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 교량 건설 등을 함께 발표했다. 왕이 부장이 지난달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5개국 외교장관과 화상회의를 했을 때도 안정적인 백신 공급과 일대일로 지속 추진이 세트로 언급됐다. 중국은 인도 사정으로 백신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된 주변국을 발빠르게 공략했다. 이 중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는 일대일로 협력을 폐기하거나 재검토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백신이 절실한 나라에 먼저 손을 내밀긴 했는데 반대급부가 명확한 지원인 셈이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제시한 신실크로드 전략이다. 해외 인프라 구축을 통해 경제 영역을 넓히는 구상으로 전 세계 140개국이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나라들이 부채 폭탄을 떠안거나 중국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받게 되면서 협력 관계를 끊고 있다. 미국은 일대일로에 대항해 민주주의 국가들의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안한 상태다.
중국은 60년 앙숙인 인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신속하게 방역 물품을 지원했다. 인도에 산소발생기 4만대 이상을 추가 지원하기 위해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백신 공급 제안도 내놨지만 인도는 응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이런 제스처가 선의로 해석되지 않는 건 무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안보협의체 ‘쿼드’ 멤버이자 중국과 국경을 두고 전쟁까지 치렀던 나라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