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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5월의 단상, 가족



며칠 전 고교 동기 몇 십 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사진 한 장이 떴다. 친구 부부와 아들 내외, 손자 손녀가 강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아들 내외는 ‘어서 와… 환갑은 처음이지’라는 문구의 작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친구는 ‘환갑 기념 춘천 일대 2박 3일 가족여행’이라고 설명했다. 평범한 가족사진 한 장은 친구들 사이에 제법 반향을 낳았다. 나이에 비해 일찍 할아버지가 됐다고 축하한데 이어 무엇보다 3대 가족여행에 대한 질투(?)가 이어졌다. ‘할배 인증 축하’ ‘부러우면 진다는데 졌다’ ‘머꼬, 앞으로 이런 사진으로 약 올리면 벌금’ ‘그 집 며느리 대단타. 시부모 동반 여행이라니…’ 등등 부러움 일색의 반응이었다.

한 세대 전쯤만 해도 한 집에 3대가 사는 것이 낯설지 않았다. 3대의 가족여행도 자연스러웠다. 일상적이던 이런 풍경이 주목을 끌 만큼 가족이 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현재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0.2%였다. 서울의 경우 1인 가구 비율은 33.4%, 가구원 수는 평균 2.33명이었다. 가족 형태가 변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확 바꾸려는 시도가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건강가족법상의 가족 개념을 사실혼, 비혼, 동거 등 현재 다양하게 존재하는 형태를 인정하는 쪽으로 변화하려 하고 있다. 민법 규정에 있는 가족의 정의를 삭제하고 법률상 가족 개념을 전면적으로 손본다는 방침이다. 가부장적 위계 중심의 4인 가족처럼 특정한 형태만을 ‘정상 가족’으로 간주했던 것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다. 반대 여론도 거세다. 시대 흐름이 변했다고 수 천년 이어온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일거에 부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전국 753개 단체가 모인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전국단체네트워크는 정부 입장엔 동성애 옹호까지 담겨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가족 해체를 촉진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졸속 정책이 그대로 추진되면 공동체의 기본인 가정은 파괴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7일), 부부의 날(21일) 등 5월엔 사람, 특히 가족과 관련된 기념일이 많다. 이날들 가운데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그리운 기억 하나 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이날에 얽힌 추억이나 세상을 떠난 부모님에 대한 회한, 유독 기억나는 선생님 등 5월은 옛날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달이다. 내게는 이틀 후 맞는 어버이날이 짠하게 다가온다. 그저께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띄운 고 정채봉의 시 ‘어머니의 휴가’에 나오는 구절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 때 엄마를 잃은 시인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단 5분만 휴가를 온대도 원이 없겠다며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눈맞춤을 하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라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했다.

가족은 삶의 동력이다. 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의 일단에 ‘일터로 몰아낸 두 아들’을 언급했다. 먹여살려야 하는 아들이 있었기에 연기에 절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수 십 년의 연기생활 끝에 맛본 최정점의 순간에 떠올린 헌사의 대상이 아들 즉 가족이었다는 사실은 최근 제기된 가족 개념의 논란, 가족이기주의의 폐해 따위를 압도할 만큼 뭉클하다. 어느 가정이든 십자가 하나쯤은 있다. 드러내기 힘든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보듬고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 일컫는 것은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 피붙이들을 생각하며 그 간절함으로 어지간한 간난신고는 이겨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정진영 대기자 겸 종교국장 jyjung@k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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