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고미술 컬렉션의 아이콘이죠.”
겸재 정선(1676∼1759)이 말년에 그린 명품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를 두고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은 이전까지 산을 그리더라도 관념 속 중국의 산을 그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 산을 직접 눈으로 관찰해 그리면서도 심중을 담는 진경산수를 열었다.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를 완성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제목에 한자로 ‘비 갤 제’(霽)를 쓰는 이 그림은 비가 퍼부은 뒤 날이 갠 인왕산 자락의 풍경을 그렸다. 붓으로 북북 그어 내린 우람한 암석, 빗물을 머금은 수림(樹林)의 먹색, 산허리를 휘감고 피어오르는 안개, 폭우로 생겨난 폭포의 세찬 물줄기, 솔숲 속 기와집 등에서 정선 특유의 힘찬 필치가 드러난다.
그림에는 화가였던 정선과 시인이었던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우정이 담겨있다. 인왕산 밑에서 태어난 둘은 인왕산 계곡서 물장구치던 죽마고우였다. 각각 시와 그림으로 일가를 이루며 평생을 교유했다.
그 우정의 비밀을 푼 이는 재야 미술학자였던 고(故) 오주석이다. 그는 이 그림에 감도는 비장감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러다 겸재가 그림을 그린 날짜에 시선이 갔다.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 1751년 윤오월 하순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날씨를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봤다가 뜻밖의 수확을 올렸다. ‘윤오월 초하루부터 18일까지 2, 3일 간격으로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다. 그러다 19일부터 25일까지 지루한 장맛비가 계속됐다. 25일 오후가 돼서 비가 완전히 개었다.’
긴 장마 끝에 날씨가 활짝 갠 날 오후에 인왕제색도를 그렸음을 밝혀낸 것이다. 평소 인왕산에 없던 폭포가 세 군데 생겨난 것도 그런 연유였다. 그림 속 기와집은 이병연이 살던 집으로 추정됐다. 75세의 겸재가 당시 사경을 헤매던 친구 사천이 장맛비가 개듯 쾌유하기를 비는 마음에서 이 그림을 그리며 친구 집을 집어넣은 것이다. 겸재의 바람과 달리 사천은 4일 후인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인왕제색도에는 인물이 없는데도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이 그림은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1910∼1987) 선대 회장이 1971년 이후 구입했고 나중에 이건희 회장에 물려준 것으로 전해진다. 미술계 관계자는 “71년 덕수궁에서 열린 호암컬렉션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한때는 소전 손재형의 소장품이었다가 다른 소장자를 거쳐 삼성가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손재형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고서화 걸작을 수장했던 서예가이자 수퍼 컬렉터였는데, 정치에 뛰어들며 소장품을 처분했던 사연으로 유명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