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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장내 세균, 질병 지도 바꾼다… 유산균 넘어 난치병 치료제로

마크로젠 제공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 ‘질병의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에 공생하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 모든 미생물 군집(microbiota)과 그들의 유전체(genome)를 통칭한다. 2001년 처음 정의된 후 새로운 산업의 원천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산균 등 식품음료, 건강기능식품(프로바이오틱스), 화장품을 넘어 이제 다양한 질병 치료와 치료제 개발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장 속 미생물 분포를 분석해 주는 진단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면역 기능을 조절하고 각종 대사물질을 생성하는데 비만, 2형당뇨, 아토피피부염은 물론 암, 자가면역질환, 간질환, 우울증 등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제2의 장기’ 혹은 ‘제2의 게놈’으로 불리는 이유다.

소화기관에 가장 많이 살아

사람 몸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약 100조개 살고 있는데 그들의 95%는 소화기관에 밀집해 있다. 대장과 소장, 위, 십이지장 순으로 많다. 한 사람의 장에는 1~2㎏의 미생물이 서식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위장관에 4000종, 입안에 1300종, 코에 900종, 볼 점막에 800종, 여성 생식기에 300종의 균이 산다.

이 가운데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치료제 연구개발이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으며 피부질환, 여성 생식기 질환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경우 과거에는 단순히 음식물 소화를 돕거나 영양소 제공 역할만 한다고 생각됐다. 최근 연구에선 인체 대사, 영양, 면역, 신경 등과 연관돼 있고 몸의 항상성 유지와 생물학적 대사 기능이 장내 세균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하대병원 마이크로바이옴센터 신용운(소화기내과) 센터장은 10일 “장에는 인체 면역세포의 60~80%가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부위보다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이 주목받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역할이 규명되면서 새로운 치료법,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소화기센터 석기태 교수도 “장내 미생물의 조성과 분포에 따라 질병의 분류가 가능하며 이를 조절할 수 있으면 질병 조절이 가능하다”고 했다.

장내 미생물은 유익균과 중간균, 유해균으로 구분된다. 유해균은 설사와 장염 등 체내 염증을 유도하고 염증 부위 세포를 암세포로 바꾸거나 신진대사를 방해해 지방을 쌓기도 한다. 유익균은 소화력을 향상하고 비타민을 합성하는 등 건강을 유지하고 면역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중간균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유익균이 되기도, 유해균이 되기도 하는데 많은 장내 세균이 여기에 해당된다.

건강하다면 유익균이나 중간균이 수적으로 월등히 많아 유해균을 억제하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익균과 중간균이 85%, 유해균이 15% 정도 있는 것이 균형 상태다. 유익균에는 비피더스, 락토바실러스 등이 있고 유해균으로는 대장균, 살모넬라, 쉬겔라 등이 대표적이다.

석 교수는 “유해균이 증가해 균형이 깨지는 상태를 ‘디스바이오시스(dysbiosis)’라고 하는데 술이나 고지방 식이, 비만, 당뇨, 고혈압 등 여러 요인과 안 좋은 상황에서 발생하고 불균형으로 인해 기존 질병이 악화되거나 다른 질병도 생기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장내 미생물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질병 지도’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한 똥, 난치병 치료에 활용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 앞선 분야는 ‘분변(똥) 이식 치료(FMT)’로 실제 임상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는 건강한 사람의 분변 속 미생물총(군집)을 환자의 장에 이식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2008년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 연구진은 8개월간 극심한 장염으로 15분에 한 번씩 설사를 하는 바람에 체중이 27㎏이나 빠져 죽음 직전까지 간 61살 여성 환자를 44살 남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치료했다. 남편의 대변 속 유익한 세균을 모아 내시경을 통해 환자의 대장에 골고루 분사(이식)했다. 환자는 이틀 만에 정상적으로 변을 보기 시작했다.

201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기존 항생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클로스트리디움디피실 장염(CDI·항생제 유발 장염)’ 치료에 FMT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국내에서도 2016년부터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 승인을 받아 항생제 내성을 보인 CDI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85~95% 수준의 치료율을 보인다. 궤양성대장염이나 크론병,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염증성 장질환에 대한 임상시험도 진행 중인데, 일부 효과가 보고돼 있다. 이밖에 비만·당뇨병 등 대사질환, 파킨슨병·치매 등 퇴행성신경질환, 자폐증·뚜렛증후군 같은 신경발달장애 등에 대한 임상연구도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관건은 감염원이 없는 건강한 사람의 분변에서 살아있고 정제된 미생물총을 분리해 내는 것. 분변은 질병 과거력이 없고 술·담배를 하지 않으며 약물 복용 경험이 없는 이들 중에 엄밀한 검사를 거쳐 기증받는다. 이를 ‘분변 은행’이라 불리는 영하 80도 냉동고에 보관하며 환자 치료에 필요 시 제공한다.

더럽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똥’이 이제 질병 치료를 위해 은행에 보관까지 하는 귀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 신종범 교수는 “기부받은 분변을 원심 분리해 이물질을 제거한 용액 상태로 환자의 장에 뿌리는 방식으로 이식한다. 미국에선 분변을 캡슐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인하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FMT 치료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부 연구소와 기업은 약물처럼 쉽게 복용할 수 있는 ‘인공 캡슐’로 제품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장내 미생물의 작용 기전이나 부작용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은 만큼, 이에 대한 규명이 우선 이뤄져야 신약 개발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몇 해 전 미국에선 면역이 약한 성인 2명이 분변 이식 치료를 받았다가 감염이 발생해 그 중 한 명이 사망한 사례가 보고됐다. 신용운 센터장은 “분변 기증자에 대한 철저한 검사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울러 면역 상태가 떨어진 환자들의 경우 분변 이식을 주의해야 하고 이식 후 철저한 모니터링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면역질환이나 암, 슈퍼박테리아(다제 항생제 내성균) 치료제 등 의약품 개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로 실제 상용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신 센터장은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잠재성은 무궁무진해 난치성 질환 치료의 새로운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 차원의 연구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 교수도 “장내 미생물의 조성과 분포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치료제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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