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감각을 깨우고 무의식에서 이미지를 끌어내는 ‘즉흥춤’은 가장 순수한 춤으로 불린다. 형식이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직관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구미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것도 무용 창작의 기본인 데다 관객이 무용가들의 자유로운 몸짓에서 신선한 자극을 얻거나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다.
국제적인 명성의 즉흥춤 축제로 자리 잡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장광열)의 21회째 행사가 오는 17~23일 대학로 일대에서 ‘공간과 즉흥’을 주제로 열린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을 중심으로 마로니에 공원, 동숭동 골목길과 스튜디오 마루 등에서 4개국 150여명이 참가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연장의 규모나 활용이 줄어든 대신 대학로의 뒷골목 등 다양한 야외 공간을 대거 무대로 이용하는 게 눈에 띈다.
주로 4월에 열린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한 달 만에 열렸다. 워크숍을 미루고 공연 규모를 줄이긴 했지만 팬데믹 초기에 문제없이 개최한 것은 세계 공연계의 주목을 모았다. 장광열 감독은 해외 무용 관계자들에게 방역 등 축제 개최 노하우 등을 전수했다.
비록 취소를 피했다곤 하지만 지난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예상치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이 취소되는 등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지속 상황을 여유 있게 고려해 축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한국과 일본 아티스트 12명의 국제협업 즉흥, 독일 디자이너의 조명과 만나는 즉흥춤 등 16명 아티스트들의 80분 릴레이 즉흥, 즉흥아티스트 네트워킹의 밤을 겸한 국제 즉흥잼과 즉흥난장 공연, 7개의 즉흥 워크숍 등이 이어진다.
특히 올해 주목되는 프로그램으로 ‘춤과 음악이 즉흥으로 만났을 때 고수 맞수 즉흥 콘서트’와 ‘즉흥이 테크놀로지, 문학과 만나면? 장소특정 관객참여’가 꼽힌다. 고수 맞수 즉흥 콘서트에선 즉흥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하우스콘서트 문화를 정착시킨 박창수와 작곡가이자 노래하는 안무가로 무용단 모던테이블을 이끄는 김재덕이 다양한 콘셉트의 음악으로 즉흥 공연을 펼친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장소특정형 관객 참여 디지털 공연에 나서는 김나이무브먼트콜렉티브의 ‘제비뽑기’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선 인지도가 낮지만, 영문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셜리 잭슨(1916~1965)의 동명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 왔다. 안무가 김나이는 맹목적으로 전통을 따르는 위험을 다룬 ‘제비뽑기’ 속 광장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설정해 장소 특정적으로 진행한다. 관객은 공연을 위해 제작된 앱을 활용해 참여한다.
서울국제즉흥축제가 끝나면 25~29일 제주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장광열)로 옮겨간다. 올해 6회째인 제주국제즉흥춤축제는 제주의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생태 즉흥춤 공연이 특징이다. 이번엔 제주돌문화공원과 문화곳간 마루 등지에서 열리며 50여명의 예술가가 출연한다.
제주돌문화공원 일원과 하늘연못 등에서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생태 즉흥 공연이,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문화곳간 마루와 댄스뮤지엄에서는 이브닝 즉흥 공연과 워크숍, 라운드테이블이, 서귀포탄츠하우스인제주에서는 열린 즉흥 공연 등이 개최된다. 해외에서 온 무용가 외에 제주에서 활동하는 무용가와 단체 등이 다수 참여한다. 특히 올해는 제주에 거주하는 일반인의 즉흥 공연 순서도 마련된다. 2019년에 문화곳간 마루를 개관하고 ‘춤추는 상가리 마을’로 변신 중인 상가리 마을과 인근 주민들로 이루어진 즉흥그룹 ‘아우라’ 등의 커뮤니티 즉흥 공연이 기대된다.
무용평론가인 장광열 예술감독은 “최근 들어 즉흥은 전 세계적으로 무용전문가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일반 대중이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예술체험과 함께 예술행위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서 “올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즉흥을 중심으로 한 공연양식을 다양화하는 한편 그동안 축적된 즉흥 콘텐츠를 토대로 국제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라 말했다. 이어 “제주국제즉흥춤축제는 대도시와 달리 제주의 자연환경을 이용한 즉흥 공연으로 특화돼 가고 있다”며 기대감을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