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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빛으로 그린 찰나의 세상’… 시간·계절 따라 효과도 달라

클로드 모네, ‘수련’, 캔버스에 유채, 100×200㎝, 1919∼1920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0여년 전,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그 어떤 그림보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연못의 물과 그 물에 비친 하늘, 빛을 반사하는 수련 등 어느 것도 형태가 분명치 않아 마치 시선이 사방으로 떠돌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림을 감상한 뒤 묘한 열패감을 느꼈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같은 데 가야 볼 수 있는 모네의 작품을 일본이 소장했다는 사실이 한국보다 먼저 근대화한 일본의 상징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도쿄의 ‘수련’은 가와사키조선소(가와사키중공업의 전신) 사장이던 마츠카타 고지로(松方幸次郞)가 1916년부터 10여년간 런던과 파리 등지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던 시절 구입해 후일 기증한 것이다.

삼성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에 모네의 ‘수련’ 연작이 포함됐다. 모네뿐 아니라 폴 고갱, 카미유 피사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마르크 샤갈의 작품도 있다. 이전까지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에선 이런 서양 근대 미술품을 본 적이 없었다. 값이 너무 올라 접근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던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의 서양근대미술품을 소장한 ‘파워 컬렉터’가 한국에도 있었던 게다.

삼성가가 이들 그림을 소장한 경위와 사연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 관계자는 16일 “이병철 선대 회장 때부터 모네든 샤갈이든 서양 근대 명화에 대한 수장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모네는 인상주의를 이끈 수장이다. 그는 시슬레, 르누아르, 피사로, 바지유 등과 함께 관전인 살롱전을 거부하며 새로운 미술을 이끌었다. 모네는 이들과 함께 1874년 첫 전시를 열었다. 그가 출품한 ‘인상, 해돋이’를 한 비평가가 조롱하며 부른 ‘인상주의’가 이들 그룹의 이름이 됐다. 이들이 추구한 그림은 이전의 사실주의와 달랐다. 휴대용 튜브 물감이 개발된 덕에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햇빛 아래서 본 대상은 실내에서 본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모네가 추구한 것은 ‘빛으로 그린 찰나의 세상’이다. 모네는 색을 섞지 않고 순색 그 자체의 작은 터치로 칠해서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반사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조롱받던 회화적 실험은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성공한 화가가 된 그는 50세가 되던 1890년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사서 이주했다. 지베르니 자택에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심은 뒤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정원과 연꽃을 그리는 데 바치며 수백 점의 연작을 남겼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작품과 같은 크기의 ‘수련’(100×200㎝, 1917∼1919년 작)이 7040만 달러(약 798억원)에 낙찰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의 ‘수련’은 이보다 늦은 1919∼1920년에 제작됐다. 백내장으로 시력 저하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에 그려진 탓에 원색의 대비가 강렬한 전작들에 비해 색이 가라앉아 있다.

“색채가 동일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이전처럼 빛의 효과를 재현할 수 없었다. 나는 중간 색조와 가장 짙은 색조를 구별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그림에서 좌절감에 빠진 모네의 독백이 들려오는 듯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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