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수학자의 연구실이라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풍경이 있다. 연구실 한쪽 칠판엔 숫자와 알 수 없는 수학기호가 가득하고, 책상 위엔 적절히 어질러져 흩어진 A4 용지들과 각종 두꺼운 책들이 놓여 있는 모습.
지난달 10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고등과학원의 김인강(55) 교수 연구실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다만 연구실 한쪽에 놓인 전동 휠체어와 목발은 달랐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불편한 두 다리를 이끌고서도 2007년 ‘젊은과학자상’, 2017년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는 등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김 교수를 지탱해준 물건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건 목발이 아니라 하나님이라 고백했다. 김 교수는 “내 인생의 모퉁이에서 언제나 지켜보고 계셨던 그분, 혹독한 삶의 질곡에 눌려 미소마저 잃어버린 나를 웃게 하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신’ 하나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충남 논산에서 한 농부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집 인근 초등학교 교장에게 “이렇게 장애가 심한 학생은 대책이 없다”며 입학을 거부당한 그는 열 살 되던 1976년, 둘째 누나를 따라 집을 떠나 대전의 재활원에 들어갔다. 거기서 목발을 짚고 홀로 서는 법을 배웠다. 재활원에서 만난 최화복 선생님은 그에게 “사람은 누구든 잘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있는데 넌 공부에 소질이 있다”고 격려해줬다. 그가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소년 김인강 마음속엔 신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질문들로 가득 찼다. 그저 인간 존재 자체가 부조리하고 모순 같았다. 실존주의를 다룬 책만 공감이 갔다.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은 대학 1학년이 돼서야 하나님을 만나며 찾았다. 비 오는 어느 날 어김없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캠퍼스를 걷던 그에게 우산을 씌워준 한 누나를 통해 그의 마음에 복음이 들어왔다. 그 누나의 소개로 기독대학인회(ESF)란 동아리에 들어갔고 함께 성경 공부를 했다.
김 교수는 “과학의 한계를 느끼던 내게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근원 되신 하나님의 존재가 마음에 들어왔다”면서 “성경에는 내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의 답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 무렵 서울에 올라와 함께 생활하던 어머니도 신앙을 갖게 됐다. 그는 “새벽기도 하시며 날 끝까지 돌봐주시고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신 어머니의 신앙을 보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릴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다”고 전했다.
천재가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그는 수학도 평면적으로 보면 답이 안 나오는데 하나님 시각처럼 입체적으로 보면 답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지식의 지경을 넓혀주셨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피조물인 우린 시공간에 갇혔지만 무한대에 계신 하나님의 그 크심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서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과학자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자로서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느낀다”며 “역사의 시작과 끝을 한눈에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나님을 만나며 삶이 안갯속 같고 가시밭길 같아도 하나님께선 가장 올바르고 의미 있는 길로 인도하실 거란 믿음이 생겼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셔서 자기 외아들을 희생시킨 절대 선”이라며 “우리에게 힘든 여정을 허락하시지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그분은 자신이 보기에 가장 합당한 길로 우릴 이끄실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픈 그의 마음이기도 하다. 척박한 현실 속 기성세대로부터 실망도 했을 청년들에게 기득권일 수 있는 자신의 조언과 격려가 위선 같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면서도 몇 번이나 세상을 등지려는 안 좋은 생각을 했던 김 교수 자신도 끊임없이 현실의 불리한 조건을 뛰어넘고자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기독청년들에게 “포로로 끌려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켰던 다니엘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 신앙을 지켜내려 노력한다면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보게 될 것”이라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삶으로 증명하자”고 권면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청년들에겐 “일본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키고 나라의 독립을 이끈 기독교 선진처럼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건 하나님의 통치뿐”이라며 “기독교는 원래 저렇다고 편견을 갖기보다 원래 하나님이 원하신 기독교를 알아보라고 권면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삶에서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기쁨의 공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기쁨의 공식의 원천은 내 삶에 동행하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 모든 삶도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이라 나누면 ‘0’이 됩니다. 그분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경건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됐으면 합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