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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해외도피와 잇단 소송전… 미국 뒤흔든 ‘동성커플 양육권 분쟁’

지난 2월 미국 버몬트주 지역 언론사 ‘브이티디거’에 소개된 리사 밀러(오른쪽)의 사연. 왼쪽은 그와 소송까지 가게 된 전 연인 재닛 젠킨스. 브이티디거 인터넷 기사 캡처




최근 논란이 되는 정춘숙, 남인순 의원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비혼 동거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간 비혼 동거는 사실혼 제도에 의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다. 결국, 개정안의 숨은 목적은 동성 가족의 합법화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외국의 시민동반자·시민결합과 유사한 비혼 동거 등록제의 도입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 오랫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은 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대 미국인 여성 리사 밀러는 재닛 젠킨스라는 여성과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비혼 동거를 시작했다. 2000년 12월 이들은 버몬트주로 여행을 가서 시민결합(civil union) 등록을 했다. 당시는 미국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되기 이전이었고, 버지니아주에는 시민결합제도가 없었다.

리사는 익명의 사람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한 후 2002년 딸 이사벨라를 출산했다. 리사와 재닛은 이사벨라가 생후 4개월이 될 때까지 버지니아주에서 거주하다가 2002년 8월쯤 버몬트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2003년 가을 리사와 재닛은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 리사는 생후 17개월인 딸 이사벨라와 같이 버지니아주로 돌아갔고 재닛은 버몬트주에 남았다.

2003년 11월 리사는 버몬트주 가정법원에 시민결합 해지 청구를 했다. 법원은 청구를 받아들였고, 리사에게 딸 이사벨라에 대한 양육권을 부여했다. 재닛에게는 정기적으로 이사벨라를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허가했다. 이들이 생모도 아니고 양부모도 아님에도, 재닛을 이사벨라의 법적인 부모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상 최초로 시민결합을 한 동성 커플도 이성 부부와 같게 다뤄져야 하며, 혼인 중에 자녀가 태어났을 때 결혼한 부부가 갖는 모든 권리를 동일하게 갖는다는 판결이 버몬트주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재닛이 이사벨라와 함께 살았던 기간은 고작 1년 5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이 무렵 리사는 회심을 통해 동성애에서 벗어났고 기독교인이 됐다. 리사는 처음 몇 번은 이사벨라가 재닛을 만나게 했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딸이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만나게 하지 않았다. 리사는 법정에서 이사벨라가 재닛의 집에 머무는 동안 강제로 재닛과 목욕을 같이했고, 이사벨라가 재닛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에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빗을 목에 갖다 대는 등 이상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했다.

그런데도 버몬트주 법원은 재닛과 이사벨라의 만남을 강제하는 명령을 내렸다. 리사가 이를 계속 따르지 않자, 재닛은 버몬트주 법원에 이사벨라에 대한 단독 양육권을 청구했다. 수년간의 양육권 분쟁 소송 과정에서 리사는 지속해서 자신이 이사벨라의 유일한 부모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리사가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모독죄를 적용해 리사의 양육권을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재닛에게 단독 양육권을 부여했다. 딸을 지키기 위해 모든 법적인 수단을 다 동원했으나 리사는 결국 최종 패소했다.

2009년 리사는 당시 일곱 살이었던 이사벨라와 함께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갔고, 다시 니카라과로 이주했다. 모녀는 거의 12년을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했다. 올해로 이사벨라는 18세가 돼 더 이상 법원의 양육권 판결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

그러나 재닛의 양육권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자녀를 해외로 납치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리사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그녀는 미국 연방수사국과 인터폴의 수배를 받았다. 모녀의 탈출을 도왔던 3명의 기독교인은 국제 아동 납치죄 방조 혐의로 기소돼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케니스 밀러 목사는 모녀의 미국 탈출을 도와준 혐의로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복역 후 만기 출소했다. 선교사인 티모시 밀러는 모녀가 니카라과로 갈 수 있도록 항공기 표를 사줬다는 혐의로 체포돼, 8개월 동안 수감된 후 가석방됐다. 사업가인 필립 조디히에이츠는 모녀가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간 후 니카라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모녀를 뉴욕주의 버펄로까지 차에 태워 데려다준 혐의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1월 리사와 이사벨라는 니카라과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자수했다. 리사는 미국 마이애미의 연방 구치소로 이감된 후 형사재판을 받기 위해 뉴욕의 연방법원으로 이송됐다. 이를 알게 된 재닛의 변호사는 재닛이 리사를 상대로 제기했다가 소재 불명으로 중단된 민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재개하기 위해 재빨리 리사에 대한 소환 명령을 법원에 청구했다. 형사 처분에 더해 리사는 민사상의 법적 책임도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을 재정의하자는 성급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참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한다. 가족은 분명 자판기로 뽑아내듯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윤성 미국 변호사 (자유와 평등을 위한 법 정책 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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