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와 방청객이 제목을 나눠서 부르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송해가 ‘전국’이라고 선창하면 객석에서 ‘노래자랑’이라 화답하는 식이다. ‘도전 골든벨’(KBS1TV)에선 슬로건부터 사이좋게 배분한다. 두 명의 아나운서와 100명의 출연자는 시작할 때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를 돌림노래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마지막에 진행자가 ‘도전’하면 학생들이 ‘골든벨’이라고 외친다.
초창기 슬로건은 이보다 길었다. ‘부정의 정답보다 양심의 오답이 진정한 명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단 의미는 살렸는데 박자 맞추기가 어려운 게 단점이었다.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예능에선 출제자가 대중이고 심판은 시청자다. ‘이 사람 문제가 좀 심각하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경주에서 탈락시킨다. 기억에서 멀어지면 등판은 요원해진다. ‘도전 골든벨’ 출연자의 목표는 ‘최후의 1인’이 되는 것이다. 정답행진에서 최후의 1인이 47번에서 멈추면 3개의 문제가 남고 프로는 끝나버린다. 50번 문제까지 맞혀야 비로소 골든벨을 울리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예능의 세계는 비정하고 험난하다. 누구도 끝까지 보장해주지 않는다. 화면에선 웃음이 넘쳐도 현역에서 명예의 전당까지 이르는 길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나 다름없다. 5리(약 2km)나 되는 짙은 안개 속이란 뜻이니 낙오 없이 50리, 아니 50년을 걸을 수 있다는 건 기록을 넘어 기적에 가깝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먼 훗날 ‘전국노래자랑’의 상속자는 누가 될까.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1926년생)보다 한 살 어린 송해 선생의 후계자로는 누가 적당할까. 가상의 MC배틀 대진표를 구상해본다. 퍼뜩 떠오르는 유재석(1972년생)은 송해보다 45년이나 젊다(어리다). 강호동 김구라 신동엽은 유재석보다 한두 살 많다. 혹시 중간그룹에 누가 없을까. 멀고도 험한 길을 꿋꿋이 달려온 역전의 용사 3명이 떠오른다. 뽀빠이 이상용(1944년생), 허참(1949년생), 그리고 임성훈(1950년생)이다. 데뷔 연도는 출생연도의 역순이다. 특이한 점 하나가 눈에 띄는데 허참의 본명도 이상용이다.
미국 텍사스주에 뽀빠이 동상이 있다는데 그 배경을 들어보니 흥미롭다.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데 그 영향으로 시금치 소비량이 늘어나 농부들이 고마운 마음에 자발적으로 세웠다고 한다. 뽀빠이는 본래 만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낙천적 캐릭터다. 긍정적인 사람과 낙천적인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긍정적인 사람은 ‘그래 그럴 수 있지. 내 탓이야’하며 체념할 수도 있다. 낙천적인 사람의 예상되는 반응은 ‘지금은 이래도 결국은 다 잘될 거야. 내가 누군데’다. 그들은 최고의 복이 전화위복임을 믿는다.
‘우정의 무대’ MC로 전성기를 구가할 때 뽀빠이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주도하며 선행과 미담의 중심에 서 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시사고발프로(‘추적 60분’ 1996년 11월)에 수술기금을 유용한 피의자로 등장한 것이다.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고 이듬해 2월 무혐의처분을 받았지만 한번 깨진 이미지는 복원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법원 판결문을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결백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이상용이 주특기를 발휘하는 대상은 어린이와 군인, 그리고 노인이다. ‘희망’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블로거가 이런 글을 남겼다. “나 어릴 때는 이 프로그램(‘모이자 노래하자’)이 가장 인기 있던 방송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채널도 없고 재미있는 오락거리도 없던 그 시절, 다양한 놀이와 율동, 노래를 가르쳐줬다. 당시 사회를 맡았던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은 국민학생들(초등학생들) 사이의 대통령이었다.”
‘우정의 무대’에서는 그의 학군장교(ROTC) 경력이 빛을 발했다. 어느 부대를 가도, 어떤 장군을 만나도 기죽지 않는 MC였다. 문법에 안 맞는 말도 가끔 있었지만 어머니를 업은 휴가병에게 ‘고향 앞으로’를 외칠 때는 부대에 남은 장병과 제대 병사의 마음들까지 모두 함께 따뜻한 동행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름다운 인생’(MBC) ‘굿모닝 실버’(EBS) ‘늘 푸른 인생’(MBC) 등 액티브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3개나 진행했다.
이상용과 임성훈은 한때 지면에 라이벌로 소개된 적이 있다.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의 응원단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마음이 가라앉은 사람들을 위해 방송으로 응원을 이어간 셈이다. 임성훈은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가수로 신고를 했고 무려 7장의 음반을 냈다. 신중현 작사·작곡의 ‘명동거리’와 ‘미칠 듯한 마음’이 그의 데뷔곡(1970)이다. ‘미칠 듯한 마음’의 원제는 ‘미치겠구나’였는데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바로 금지곡이 됐다. 이 곡이 실린 옴니버스 음반에 그 유명한 박인수의 ‘봄비’가 들어있다. 김홍탁이 작곡한 히식스(보컬 최헌)의 ‘당신은 몰라’(1975)의 원곡 가수도 임성훈이다. ‘시골길’이라는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TBC남자신인가수상도 받았다. 참고로 그해(1976) 남자가수상 수상자는 남진이었다. 징크스가 있는데 모교응원단이 ‘시골길’을 합창할 때마다 상대 팀으로부터 골을 먹어서 정기전에서 기피대상곡이 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최초의 개그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살짜기 웃어예’(TBC 1974)에서는 최미나(허정무 감독의 아내)와 개그 콤비로 주목받았다. 이 둘은 인기에 힘입어 영화에도 동반 출연(1976)했다. 제목은 ‘신혼소동’(감독 전조명)이었다. 임, 최 남녀공동MC로 본격적인 첫발을 내디딘 프로는 ‘가요올림픽’(1975)이었다. 전설의 순위 프로 ‘가요톱텐’을 무려 11년 동안(1981-1991) 진행한 사람도 임성훈이다. 2021년엔 아카데미상 수상작에도 얼굴을 내민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윤여정)가 미국에 도착한 후 TV를 시청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 한국 쇼프로그램이 잠깐 등장한다. 제목이 ‘100분쇼’(KBS2TV)인데 그때 MC가 곽규석(후라이보이) 임성훈 정혜경이었다.
임성훈은 TBC(동양방송)를 필두로 K, M, S를 종횡무진한 방송인이다. 그가 진행한 ‘10시 임성훈입니다’(MBC)에는 최초로 대통령 후보들(당시 김대중 이회창 김종필)이 생방송에 출연했다. 성교육강사 구성애가 처음으로 출연해 금기를 깬 화제의 프로였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그가 현역이라는 사실이다. 1998년부터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를 진행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의 장수기록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재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최종점수 몇 대 몇’으로 유명한 허참 역시 예능계의 멀티플레이어다. 음악다방 쉘부르에서 활동을 시작해 1972년 ‘7대 가수쇼’(TBC) MC로 정식 데뷔했다. ‘왜 몰라주나’(1976) ‘추억의 여자’(2007)에 이어 ‘아내는 지금’(2019)이라는 노래로 꾸준히 가수 활동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족 오락관’(KBS2TV)에서 보여준 편안한 진행능력이 압권이었다. 허참은 첫 회(1984)부터 최종회(2009)까지 고정이었고 그와 함께한 역대 여성 진행자는 무려 21명이었다.
가족오락관의 역대 게임 수는 총 451개다. 그중 빅3를 뽑는다면 ‘스피드게임’ ‘폭탄게임’ ‘고요 속의 외침’(처음 제목은 ‘목소리를 높여라’)일 것이다. 스피드게임은 퀴즈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것으로 같은 팀끼리 문제와 해답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하면 다른 한 사람이 ‘돈’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알고 보니 설명한 사람이 준비한 단어는 ‘가족’이었다. 이 세 게임은 공통적으로 소통의 소중함과 희생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크게 웃었던 게임에서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인간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다. 살면서 ‘몇 대 몇’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때 이긴 팀이 그 후 계속 행복했다는 전갈은 아직 못 받았다.
주철환 프로듀서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