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미국의 첫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인 ‘머큐리 계획’에 크게 기여했으나 그 공로가 오랫동안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 여성 3명이 있다. 수학자 캐서린 존슨과 컴퓨터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엔지니어 메리 잭슨이다. 이들이 흑인에 여성이라는 이중 핸디캡을 딛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한 이야기는 2016년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숨겨진 인물들)’라는 제목의 책과 영화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NASA는 머큐리 계획을 실행할 당시 우주비행사로 남성 7명을 뽑는 ‘머큐리7’과 여성 13명을 뽑는 ‘머큐리13’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두 프로그램의 남녀 참여자들은 모두 똑같은 강도의 훈련과 테스트를 거쳤다. 하지만 최종 선발된 우주비행사는 머큐리7, 즉 남자들이었다.
그때 여자라서 탈락했던 머큐리13의 최연소(22세) 멤버 월리 펑크는 올해 82세다. 그가 60년 만에 우주비행의 꿈을 이루게 됐다. 세계 최고 갑부 제프 베이조스가 만든 우주탐사기업 블루오리진은 이달 20일 자사 우주선 ‘뉴셰퍼드’의 탄도비행에 펑크가 참여한다고 1일 발표했다. 펑크는 베이조스와 그의 동생 마크, 그리고 경매에서 우주여행 티켓을 따낸 1명과 함께 뉴셰퍼드를 타고 지구와 우주의 경계인 카르만 라인(고도 100㎞ 상공)까지 갔다 올 예정이다. 비행시간은 10분 정도고, 이중 몇 분간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펑크는 이번에 최고령 우주여행자로 기록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최고령 우주여행 기록은 머큐리7 멤버 존 글렌이 세운 77세였다. 오랫동안 히든 피겨스였던 머큐리13 출신이 머큐리7에게서 최고령 타이틀 하나를 뺏어와 설욕하는 셈이다.
펑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넌 여자잖아. 그거 못해’라고 말했지만, 난 ‘뭐든 상관없어. 그걸 하고 싶다면 여전히 할 수 있어’라고 했다. 난 아무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하는 게 좋다.”
천지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