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결핵 등 흔적일 확률 높아
폐암 확인돼도 초기라 완치 가능
1㎝ 이상일 땐 제거하는 게 유리
폐암 확인돼도 초기라 완치 가능
1㎝ 이상일 땐 제거하는 게 유리
건강검진에서 흉부 CT검사가 대중화되면서 ‘간유리 음영 폐 결절(종괴)’ 발견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폐 영상에서 뿌옇게 보이는 간유리 음영은 흔히 폐암의 초기 징후로 알려져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포털사이트에는 이와 관련된 상담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얼마 전 간유리 음영 진단과 6개월 추적관찰 권고를 받았다는 한 네티즌은 “담배를 피운 지 10년 정도 됐다. 가슴 쪽에 쿡쿡 찌르는 느낌과 왼쪽 어깨·목에 통증이 있는 상황에서 검진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무섭기도 하고…. 6개월 후면 폐암인지 알 수 있나요”라며 도움을 구했다.
의학기자 출신 유명 유튜버는 최근 SNS에 “왼쪽 폐에 1.9㎝ 간유리 음영이 있는데, 조직검사하면 백발백중 폐암이니 수술로 떼내야 한다”고 언급해 폐암 투병 오해를 샀다. 뒤늦게 실제 폐암 판정을 받은 건 아니라고 해명해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처럼 무조건 ‘간유리 음영=폐암’으로 예단하고 겁을 내는 것은 폐암이 그만큼 무서운 암이기 때문이다. 조기 발견이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다. 폐암은 수 십년째 국내 암 사망률 1위다.
하지만 간유리 음영의 원인이 다양하고 설사 폐암으로 확인되더라도 대부분 초기인 경우가 많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즉 ‘폐암의 씨앗’ 단계이기 때문에 적절히 치료받으면 대부분 완치된다는 것이다.
결핵·폐렴 등 원인… 폐암은 대부분 초기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이성수 교수는 23일 “최근 건강검진에서 간유리 음영이 발견됐고 인터넷 찾아보니 폐암일 수 있다고 해 밤잠을 설치며 과도한 걱정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암이 아닐 수 있고 폐암으로 밝혀질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흉부CT를 찍었을 때 영상이 뚜렷하지 않고 뿌옇게 보이는 부분이 발견되는데, 마치 간유리(겉면을 미세하게 갈아 불투명하게 만든 것)를 통해 보는 것 같다고 해 ‘간유리 음영’으로 불린다. 흉부X선 촬영으론 안 보이고 CT를 찍어야만 알 수 있다. 2019년 8월부터 저선량 CT를 활용한 국가폐암검진이 시행되면서 폐에서 간유리 음영을 발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간유리 음영은 초기 폐암에서 보일 수 있지만, 폐렴이나 결핵의 흔적이기도 하다. 폐가 조금 수축돼 있거나 일시적 염증, 상처, 섬유화(딱딱해짐) 등도 원인이 된다. 따라서 간유리 음영이 보였다고 해서 모두 폐암인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간유리 음영은 병명이 아니라 CT상에서 뿌옇게 보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새로 찍어보면 사라지기도 한다. 암 보다는 폐렴·결핵 등 염증의 흔적인 경우도 많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또 한 번의 CT촬영에서 간유리 음영이 나타났다고 해서 바로 폐암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3~6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다시 CT를 찍어봤음에도 똑같은 간유리음영이 보일 경우 다른 의학적 판단을 더해 폐암 가능성을 타진한다. 간유리 음영이 동그랗게 일정한 모양이거나 다른 촬영 각도에서도 형태가 비슷한 경우 폐암을 의심한다.
같은 병원 흉부외과 문덕환 교수는 “간유리 음영은 순수 간유리 음영과 부분 고형(덩어리) 간유리 음영으로 나뉘는데, 간유리 음영 내에 딱딱한 고형 성분이 그대로이거나 약간 커졌다면 암 진행 가능성이 높다”면서 “해외 학술지 발표 연구에서 고형 성분이 조그맣게 있는 경우 87%, 고형 성분이 많은 경우 99% 이상 암으로 진단됐다”고 설명했다.
치료 시기·방법 국내 지침 없어
미국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순수 간유리 음영의 경우 2㎝까지는 지켜봐도 괜찮다는 지침이 있다. 일본에선 1.5㎝까지는 관찰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하지만 고형 성분이 부분적으로 섞인 간유리 음영이 조금이라도 나타났을 때는 빨리 수술적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고 미국과 일본의 지침이 동일하게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간유리 음영 치료 시기와 방법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지만 임상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1㎝ 이상이면 순수 간유리 음영이라도 조기에 수술하는 편이 낫다고 전문가들 사이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이성수 교수는 “2㎝ 이하 간유리 음영 수술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95%가 폐암으로 확진됐다. 나머지 5%도 암이 되기 직전이었다. 또 간유리 음영이 1㎝가 넘어가면 약 80% 가량은 암이 미세하게 주변을 침범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크기가 작아도 흉막을 뚫고 흉강으로 퍼지면 폐암 말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1㎝ 이상은 수술로 일찍 치료하는 편이 환자에게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조언했다.
간유리 음영을 조기에 제거하는 게 좋은 이유는 또 있다. 간유리 음영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 암일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사는데, 특히 건강염려증이 있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될 수 있다. 폐암일 가능성이 높은 간유리 음영을 그대로 두고 불안 속에서 계속 CT를 찍는 불편을 감수하기 보다는 적극 치료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순수 간유리 음영일 땐 ‘쐐기 절제술(혹은 구역 절제술)’ 같은 최소 침습 수술법으로 주변 2㎝ 정도만 절제하면 폐 기능을 보존할 수 있다. 수술로 떼낸 조직을 검사하면 암 여부를 보다 일찍 알게 돼 오히려 안심되는 측면도 있다.
이 교수는 “환자들은 간유리 음영의 크기나 내부 고형 성분의 비율,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크기·성분 변화 등을 제대로 알고 수술로 제거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충분히 파악한 뒤 의사와 상의해 절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