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강원도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에 한 청년이 열정으로 세운 대학이 있었다. 다소 엉뚱해 보일 법한 이 대학의 이름은 ‘우유곽대학’. 당시 27세 학사장교였던 최영환(41·엠트리·아웃오브보트)대표가 상상 속에 설립한 가상대학이다. 비록 상상 속 대학이지만, 각 분야 최고의 리더들을 ‘우유곽대학’의 교수로 세우고 싶었다.
그는 군대에서 버려진 우유곽을 수거한 뒤 깨끗하게 씻어서 말렸다. 그리고 우유곽에 깨알 같은 글씨로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리더들에게 편지를 썼다. 동시대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솔하고 아날로그적인 소통 방식에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 배우 안성기부터 ‘긍정의 힘’의 저자인 조엘 오스틴 목사까지 답신을 보내왔다. 비전과 소망을 주는 그들의 메시지는 청년들을 다시 꿈꾸게 했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 대표는 “우유곽대학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청년들을 응원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1년의 6개월은 뉴욕, 3개월은 유럽, 2개월은 아프리카 그리고 1개월은 한국에 머물며 활동하는 그는 국내를 넘어 미국과 유럽, 개발도상국 청년들의 네트워킹을 만들어 서로의 꿈과 가치를 이어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다보니 ‘해외파’인 줄 아는데 저는 부산 영도에서 나고 자란 ‘지방파’입니다. 영도가 그리 낙후된 지역은 아니었는데, 중학생 시절 친구들은 저를 낙후된 지역에 사는 아이로 여겼어요. 저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영도는 떠났지만 경상도는 벗어나지 못하고 포항의 한동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서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학교 슬로건인 ‘Why not change the world(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가)’라는 메시지는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최 대표는 “강의실, 기숙사 심지어 일회용 커피 컵에도 슬로건이 새겨져 있었다. 한 해, 두 해 지나며 세뇌되더니 졸업할 즈음에는 어느 새 내 좌우명이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후 간 곳은 군대였다. 학사 장교 출신인 최 대표는 “군대만큼은 메이저 무대인 육군본부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점수를 잘 받으려고 공부와 체력훈련도 정말 열심히 했다”며 “그런데 그 해부터 컴퓨터 추첨으로 바뀌면서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 DMZ로 배치 받았다”고 말했다.
부대는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은 고립된 곳에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장병들의 군 생활을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를 고민했다. 장병들과 면담하며 동시대 청년들이 갖고 있는 내면의 아픔도 알게 됐다. 그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신뢰학과, 관계학과, 나눔학과 등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걸 가르치는 대학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가상대학 설립으로 이어졌다. 바로 ‘우유곽대학’이었다. 교수로 초빙하고 싶은 저명인사 100여명에게 편지를 썼다. 국내외에서 35명이 답신을 보내왔다. 전역 후에는 답신을 보내온 그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리더들에게 들은 귀한 교훈을 엮어 2009년 발간한 책 ‘우유곽 대학을 빌려 드립니다’는 서점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최 대표는 많은 만남 중 자신의 가슴을 가장 뛰게 한 건 “전 세계 청년들과의 만남이었다”고 고백했다. 2009년 ‘겨자나무’라는 뜻을 가진 엠트리(M-tree)회사를 뉴욕에 설립했다. 이곳은 세상을 변화시킬 열정과 비전을 가진 청년들을 네트워킹하는 곳이다.
“미국, 유럽의 청년들이 함께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마라족 아이들에게 미술, 패션, 음악, 건축, 기술 등을 가르치며 꿈을 심어주고 있어요. 5년 전부터는 아이들의 작품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다시 아이들을 성교육하고 생리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국내에 ‘아웃오브보트’ 회사를 세웠다. 이곳은 선한 가치를 공유하는 멤버십 커뮤니티다. 최 대표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을 만나면서 얻게 된 경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청년들은 이 정보를 토대로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이용해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한다.
요즘 청년세대가 가진 고민에 대해 최 대표는 “청년들이 코로나19, 암호화폐, 부동산 등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출발이 다르다는 걸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며 “다만 답답한 것은 청년세대를 폭넓게 품어주지 못하고, 신뢰를 줄 수 없는 기성세대를 바라볼 때”라고 했다. 이어 “청년의 고민과 생각을 인내로 들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시대 청년들에겐 “꿈을 함께 나눌 믿음의 동역자를 만들라”고 말했다.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마주할 때, 내 옆에서 꿈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큰 힘이 됩니다. 때로는 세상이 여러분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 느껴지게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기억하며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