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석(60) 광림교회 목사는 “10대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고 했다. 그 시절 느낀 흥건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감정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어서였다. 김 목사는 아버지(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 뜻에 따라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경남 거창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다. 친구들은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갔지만 김 목사는 그럴 수 없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광림교회에서 만난 김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가려면 김천이나 대구로 나와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야 했어요.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죠. 집에 자주 갈 수가 없었어요.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면 공동묘지가 나오고, 그 주변엔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하나는 김천, 나머지 하나는 대구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주말이면 홀로 그곳에 가서 도로에 오가는 버스들을 보며 ‘나는 왜 저 버스를 탈 수 없을까’ 생각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성령한국 청년대회×갓플렉스(GodFlex) 시즌 2’(이하 갓플렉스)에 관한 이야기로 뻗어 나갔다. 다음 달 19일 광림교회에서 열리는 갓플렉스는 국민일보와 광림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서울남연회,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회장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청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김 목사는 “갓플렉스가 예수님께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청년들, (교회라는) 집을 떠나왔다는 아쉬움을 품은 젊은이들을 태우는 버스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담=이명희 종교국장
-광림교회에서 개최하던 성령한국 청년대회가 올해엔 갓플렉스와 함께 열리게 됐다.
"한국교회가 가진 신앙의 힘은 한국을 성장케 한 원동력이었다. 기독교는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에 유교나 불교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던 시기 이 땅에 들어와 자유와 평등, 평화의 가치를 전했다. 한국교회를 빼면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설명할 수 없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교회에 청년이 많았다. 교회가 청년운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청년들로부터 꿈이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광림교회는 청년들에게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전하기 위해 2013년부터 2년 주기로 성령한국 청년대회를 열었다. 이번엔 갓플렉스라는 이름도 내걸고 행사를 열게 됐는데, 청년들에게 소망을 주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되새기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 많은 청년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행사가 되기를 바라나.
"지금의 청년들은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다.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엔 노력하고 땀을 흘리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꿈과 비전을 이룰 여지가 많이 사라져버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일은 많은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누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고…. 갓플렉스를 통해 청년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었으면 한다."
-갓플렉스에서 설교를 맡았다. 어떤 메시지를 전할 생각인가.
"하나님 나라의 거룩성을 회복하자는 얘길 하고 싶다. '거룩하자'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열심히 다니자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자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회복되는 삶을 가리킨다. 갓플렉스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향해 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함께 모색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광림교회는 청년선교에 집중하는 교회다. 지난해 기감 서울남연회 감독으로 취임한 뒤에도 청년 사역을 위해 애쓰겠다고 했다. 청년 사역에 주목하는 이유는 뭔가.
"한국교회의 위기는 교회에서 젊은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40%다. 청년 중에는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을 늦게 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많다. 1인 가구에 대한 목회적 돌봄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사람들은 교회의 위기가 세습이나 비리 탓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제대로 된 분석이 아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줄어드는 게 위기의 본질이다."
-청년들은 희망이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딱히 청년들에게 전할 위로나 격려의 말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견뎌보자' '인내하자' '실력을 쌓자' 정도다. 소망이 있으면 인내할 수 있다. 우리가 왜 지금 모일 수 없는가. 그건 코로나19가 가진 강한 전염성 탓이다. 믿음에도 전염성이 있다. 바로 '영적 전염성(spiritual contagiousness)'이다. 영적 전염성이 있다면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이 가능하고, 성화의 과정이 생길 수 있다. 우린 그걸 해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의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항상 위기였다. 한국사회만 놓고 보면 3개의 분기점이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행한 거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절대성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독교의 구원관과는 대치되는 거였다. 둘째는 포스트 크리스텐덤(기독교제국)이었다.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게 삶의 기반이었던 사람들이 '쇼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삶의 그라운드'가 바뀐 셈이다. 셋째가 바로 포스트 코로나다. 코로나19 탓에 모일 수 없는 상황이 오래 지속됐다.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식이다.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어야 구원이 가능하다. 하나님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어릴 때부터 목회자를 꿈꾸었나.
"목회자 집안이었던 우리 집안에서 나는 장남이었다. 과거엔 장남은 무조건 (목사로 키워)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10대 시절엔 목사가 돼야 한다는 것에 특별한 반감이 없었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민감한 일이 많이 벌어진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목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다. '목사가 돼야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동생(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과 내가 달랐던 건, 동생은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나는 틀 안에서 순종하면서 고민을 거듭했다는 거다. 결국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남들은 내가 (젊은 시절) 넉넉한 삶을 살았을 거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낀 적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식의 경험을 한 적은 없다. 다만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한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를 드리고 있노라면 하나님이 내게 강력하게 주는 마음이 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여기는데 하나님은 나를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가시곤 한다. 그러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엔 그 일을 해내게 되더라. 믿음의 생활은 우리의 세계관을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바꿔나가는 일이다. 나 자신이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위치는 높아지는 상황이 벌어져야 한다."
-아버지 김선도 목사는 어떤 분인가.
"학창 시절 내게 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었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마주하는 순간이 아침 식사 자리였는데, 그 자리가 너무 두려웠다. 왜냐하면 매번 나를 꾸중하셨으니까. 대학생이 된 뒤로는 아버지와 아침 식사를 하는 게 부담스러워 일부러 아침을 안 먹기도 했다. 아버지가 요즘 조금 편찮으신데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옛날에) 내가 너한테 너무 심했지?'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는 목회자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 알려준 분이고, 내게 영적인 유산을 많이 남겨주셨다. 내 목회의 스승이자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기도 제목이 있다면.
"어떤 젊은이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더라.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요.' 그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낫싱(nothing)'이라고 답했다. 삶을 돌아보면 내가 하나님께 어떤 존재라고, 즉 '애니싱(anything)'이라고 여기면 하나님은 나를 '낫싱'으로 만드시곤 했던 것 같다. 반면 내가 낫싱일 뿐이라고 여기면 하나님은 내 안에 무언가를, 즉 '섬싱(something)'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기도할 때 '하나님 ○○해 주세요'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고백하곤 한다. 목사가 너무 나서면 교회는 사라지게 된다. 목사가 조용히 있어야 교회 공동체가 튼튼해지고 교회가 건강해진다. 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