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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여행의 기술, 서민의 기술



‘에마(ema)’는 고추, ‘다찌(datshi)’는 치즈라는 뜻이다. ‘에마다찌’는 부탄에서 매끼 식사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대표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납작하게 썬 자색양파와 마늘, 적당한 크기로 썬 토마토와 함께 주재료인 고추를 세로로 2~4등분해 냄비에 담는다. 재료들이 자작자작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버터도 조금 잘라 넣은 후 뚜껑을 닫고 중간불에서 끓인다. 재료들이 80%가량 익을 때쯤 치즈를 넣어 한소끔 끓여 치즈가 잘 풀어지도록 저어주고, 간을 봐가며 소금과 후추를 추가하면 된다. 취향에 따라 고수 토핑.

이건 특급 비밀인데, 히말라야 산골 민박집 딸 19살 지미는 빨간 건고추를 불에 그슬려 고추씨까지 다 섞어 넣었다. 그래야 더 매콤하고 맛있다. 몇 년 전 지미에게 배운 레시피대로 나도 집에서 몇 번 에마다찌를 해먹었다. 우리 태양초 건고추를 쓰면 딱 좋고, 말리지 않은 풋고추에 청양고추 한두 개를 섞어 넣어도 괜찮다. 그들은 코티지치즈를 썼는데, 나는 처음엔 리코타치즈를, 다음엔 페타치즈를 써봤다. 또 한 번은 숙성되지 않은 인도식 치즈인 파니르치즈를 구입해 사용했다.

부탄 사람들은 반찬을 커다란 접시에 종류별로 담아낸다. 넓적한 개인 접시에 밥과 반찬을 알아서 덜어 먹는다. 마치 뷔페처럼. 찰기 없는 부슬부슬한 쌀로 밥을 짓는데, 밥을 꽤 많이 먹는다. 밥을 많이 해서 커다란 그릇에 고봉으로 듬뿍 담아 놓는다. 그리고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많이 먹고도 남는 일이 잦아서, 저녁에 먹다 남은 밥은 다음 날 아침 에마다찌와 함께 살짝 볶아 먹는 것이 일반 서민들의 흔한 아침상이라 했다. 한 달 가까이 나를 안내해준 현지 가이드, 민박집 딸과 나는 전날 저녁에 남은 밥을 볶아 아침상을 차렸다. 그 아침, 우리는 히말라야의 가족이었다.

머지않아 다시 시작될 해외여행을 위해 소소하지만 작은 나만의 여행 기술 두 가지를 소개하겠다. 하나는 그 나라 요리법 한두 가지를 배워오는 것이다. 동네 마트에서 현지 향신료를 사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은 유튜브로도 얼마든지 레시피를 알 수 있지만, 내가 가본 레스토랑이나 가정식 레시피를 알아오는 것은 은근히 자부심이 넘치는 일이다. 두 번째 여행 기술은 현지 로또를 사오는 것이다. 거리에서 로또 전문점이나 로또 상인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산다. 책갈피 어딘가 끼어 있을 여러 나라의 로또들 중 분명히 1등에 당첨된 행운의 로또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사는 건, 등은 따습지 않아도 배가 두둑한 일이다. 부탄에서는 외국인에게는 당첨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가이드와 당첨금을 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미안하다. 내가 그만 로또를 가져와 버렸다.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거나 로또 아파트를 받지 못해도 이런 여행의 기술, 그것도 아주 보잘것없는 서민의 기술을 터득하며 사는 내가, 우리가 낫다. 내 친구 지미의 에마다찌 레시피가 ‘50억 클럽’의 비밀 계약서보다 소중해서, 오늘 나는 오랜만에 부탄의 요리를 맛보련다.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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