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구십도 괜찮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요즘 서점가에 쏟아지는 할머니를 주제로 한 책들이다. 가난 때문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는 이야기부터 여행 가방에 관절약, 소염제, 찜질팩을 넣고 해외 자유여행을 떠나는 7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만년(晩年)의 시간을 당당하게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귀엽고 멋진 할머니’가 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귀엽고 멋진 할머니는 노인이란 이유로 고리타분하지 않고 무기력하지도 않다. 또 불편한 육신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매일 궁금하다. 주체적인 노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은 불안한 노년기를 걱정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그러나 귀엽고 멋진 할머니를 동경하는 젊은 층의 심리 기저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여성들은 태어난 후 소녀에서 숙녀로, 그리고 어머니에서 할머니로 성장하는 생애주기를 거친다. 여성의 평균수명은 86.3세, 남성은 80.3세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길어 노년기에 혼자 사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 이때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지팡이 대신 캐리어를 끌고 해외여행도 갈 수 있다. 여성 노년의 삶은 녹록지 않다. 여성 노인의 빈곤은 무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년기 이전의 성차별적인 노동시장과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의 삶과 관련이 있다.
“과연 우리는 무사히 귀엽고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란 질문을 해본다. 어쩌면 귀엽고 멋진 할머니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몫이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50대 초반의 동생이 대뜸 “언니 이제 난 ‘소년 할매’가 장래 희망”이라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여든여섯 살의 친정엄마를 돌보며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아름다우며,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부하며 이는 젊을수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귀엽고 멋진 할머니보다 씩씩하고 역경에 굴하지 않는 소년 할매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 할매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려본다. 소년 할매는 골목대장같이 씩씩한 성격이지만 꽃처럼 향기롭게 살고 싶은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소년 할매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경청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또 누군가의 성공을 시기 질투하지 않고 마음 깊이 기뻐해 주며, 내가 최고라 생각하지 않고 남을 인정해주는 마음의 여백이 있는 사람이다.
일본의 기독 작가 소노 아야코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원제 계로록)에서 노년기에 필요한 네 가지를 허용, 납득, 단념, 회귀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허용’이란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납득’은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에 정성을 다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삶 전체에서 보려는 노력이다. 또 ‘단념’은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회귀’란 죽음 이후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를 곱씹으며 노년기에는 신체와 두뇌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신적이고 영적인 요구에 제대로 응답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하지 않으면 영혼은 쇠퇴하고 암울한 마무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육체적 질병의 고통이 있으면 기도하기도 힘들어지므로 나이가 들수록 기도 시간을 늘려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다. 대학 입학 수석이나 미인대회 수상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의 승리나 대기업 취업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명예로운 훈장을 받지 못해도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았다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는 바울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