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느는 게 일반적이다. 공급량은 그 반대로 움직인다. 시장가격은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는데 수요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도 있다. 경제학 용어로 베블렌 효과라고 하는데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유래했다.
베블렌 효과는 재력이 풍부한 상류층에서 주로 나타난다. 명품시장이 대표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명품으로 치장하는 명품족의 심리 기저엔 과시욕과 우월감이 자리한다. ‘너희들은 이런 거 없지’하는 쓸데없는 허영심 말이다. 백화점 등에서 명품행사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북새통을 이룬다. 심지어 전날부터 줄 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줄서기 아르바이트도 생겼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은 유별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명품시장 규모는 125억420만 달러(약 14조8300억원)로 독일을 제치고 7위로 올라섰다. 한국보다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뿐이다. 지난해 세계 명품시장 규모는 코로나 팬데믹 영향 등으로 무려 19% 줄었는데 한국에선 고작 0.1% 감소에 그쳤다. 파노플리 효과(상류층이 되기를 선망하는 사람들의 소비 행태)도 한몫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최근 일부 핸드백 가격을 인상했다. 올 들어 네 번째 인상이다. 이로써 클래식백 라인은 모두 1000만원 선을 넘었다고 한다. 올해에만 260만원가량 올랐다. 국내기업이 이랬다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을 텐데 샤넬의 가격 인상엔 지나치게 관대하다. 백 하나 가격이 웬만한 경차 가격 버금가는 데 한 번 놀라고, 그런데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는 데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처럼 터무니없이 가격을 많이, 그리고 자주 올려도 기꺼이 ‘호갱’이 되려는 소비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들의 갑질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이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