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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 가난은 포퓰리즘 대상 아니다



전쟁의 참화가 끝난 1953년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6달러였으나 지난해에는 3만1637달러였다. 명목가치로 481배 증가한 것이다. 실질가치로는 1953년 근로자가 평균적으로 벌어들인 1년 소득을 지금은 10일이면 버는 시대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그와 같은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를 포함해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 나라들 모두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우리만큼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경우는 찾기가 어렵다.

20세기 후반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은 크나큰 역사적 교훈을 남겼지만 그와 함께 아직 해결되지 못한 많은 의문을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이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세계에는 부유한 국가보다 가난한 나라가 넘치는데 왜 그 나라들에서는 경제발전이 아예 일어나고 있지 않거나 더딘 것일까? 이 세상의 모든 국가가 함께 풍요로운 시대가 오기는 올 것인가?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언제란 말인가?

아마도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한 국가의 성공은 그 구성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무엇인가를 추구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무수히 많은 질곡과 갈등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적어도 일치된 목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경제발전은 몇몇 뛰어난 누군가가 아니면 지도자 한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목표를 설득하는 존재이지 성공을 담보하는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빛나는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이 그토록 가난했던 70년 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감히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풍요 속에 빈곤은 깊어지고, 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커졌다. 또 갈등은 첨예화되고 이념의 과잉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사회적 불만을 거르고 순화할 수 있는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여기에다 불을 지르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불만과 갈등의 재생산을 통해 사익을 극대화하는 풍조가 지난 5년 사이 만연하고 있다.

잘살게 됐다는 것이 갈등의 극대화로 귀결된다면 무엇을 위해 경제적 풍요를 추구한다는 말인가. 행복이 경제적 풍요로움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복은 경제에서 상대적인 위치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절대적인 소득의 역할은 크지 않다는 결과를 적지 않은 연구가 보고하고 있다. 결국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룰 것인가라는 케케묵은 주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칭송할 것은 못 되지만 가난을 불행의 씨앗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다. 가난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한둘인가. 우리는 과거의 가난으로부터 겸손과 나눔의 미덕을 배웠고, 풍요로움의 가치를 깨달았다. 가난 때문에 우리는 더 가까이 있었고, 더 큰 내일의 희망을 꿈꾸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선배들과 우리 모두는 희생하면서 잘살게 될 날을 가꾸어 왔고 그 꿈을 이뤘다. 역설적이지만 가난이 미래의 힘이 된 것이다.

가난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어느덧 불행한 대한민국은 지금 이 질문을 한 번 더 물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난마저도 포퓰리즘의 대상이 된 시대가 됐지만 풍요로움이 아름다운 과거마저 묻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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