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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관심을 나눠 갖는 일



오늘은 홍정운군이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던 정운군은 지난해 10월 6일 현장실습을 나간 회사에서 요트 밑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회사는 면허도, 경험도, 자격도 없는 실습생에게 잠수 작업을 시켰고, 정운군은 12㎏에 달하는 납덩이가 달린 벨트를 차고 일을 하다가 수심 7m 아래로 가라앉아 숨을 거뒀다. 지난해 일어난 많은 사건 가운데 가장 흥건한 슬픔을 남긴 일을 들라면 나는 이 사고를 첫손에 꼽고 싶다.

논픽션 작가 은유는 르포르타주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2019)을 통해 특성화고 아이들이 마주하는 살풍경을 그려낸 바 있다. 책에는 인생의 환절기 같은 시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0대이고, 노동자이고, 인문계고에 다니지 않았기에,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쓸쓸히 세상을 등져야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꿈도, 배경도, 하는 일도 달랐지만 이들이 겪은 사고엔 공통점이 있었다. 적응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돼 모두가 꺼리는 일을 떠맡았다. 현장에서는 기본적인 노동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신이 걸머진 고통을 공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런 공통점은 정운군 사건에도 그대로 포개진다. 저자의 말마따나 특성화고 아이들은 “툭 치면 세상 밖으로 내쳐지는 간당간당한 생”을 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특성화고 부모나 학생의 이야기 중엔 밑줄을 긋게 만드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이 사회에서 특성화고 아이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일부러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순진하고 멍청하게 개처럼 일하길, 무식하길 바라는 거예요.” “사회가 좋아지려면 여린 사람들을 존중하고 여린 것들을 섬세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해요. 섬세함을 섬세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이미 일상이 폭력화돼 있는 거예요.”

특히 이민호군 아버지의 말은 가슴을 뻐근하게 만든다(민호군은 2017년 제주의 한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힘을 너무 많이 가진 게 원인”이라고.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공론장의 조종간을 틀어쥐고 있으니 한국의 교육 담론은 항상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입시 정보와 사교육 이슈가 교육 담론의 뼈대가 되곤 한다.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인 특성화고 아이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경우는 끔찍한 산업재해를 당했거나 취업률과 관련된 특이점이 발견될 때뿐이다. 슬픈 일이다.

최근 출간된 ‘한국의 논점 2022’에는 성현석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이 쓴 ‘교육의 투명인간들은 언제까지 벗고 지내야 하나’라는 글이 등장한다. 그는 직업교육을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매년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묻는데, 답은 9만명 수준이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하면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을 거친 뒤 졸업한 학생이 각각 7만9503명, 5666명, 4829명이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대입이 아닌 취업이다.

그렇다면 입시를 준비한 학생은 얼마나 될까.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서울의 4년제 대학, 카이스트 같은 지방 유력대에 진학하는 학생은 매년 ‘취준생 고교생’과 비슷한 9만명 정도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처럼 비슷한 규모의 두 집단이 각기 다른 목표를 좇고 있다. 그러나 공론장에서 다뤄지는 고교생 이슈는 입시뿐일 때가 많다. 저자는 “교육 불평등 완화는 (두 집단이) 공정하게 사회적 관심을 나눠 갖는 데서 비롯한다”고 적었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현장실습생의 비극을 결딴내는 해법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박지훈 종교국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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