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47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3명 중 한 명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의 흥망성쇠가 지도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주일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선출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은 어떤 후보를 선출해야 할까요. 여기에 복음주의교회가 꺼내 든 ‘리트머스 용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낙태, 동성 간 성행위, 이단, 복음적 평화통일 문제입니다. 낙태, 동성 간 성행위, 이단 옹호는 아무리 인간 지식으로 재해석하고 장황한 이론으로 포장해도 성경의 진리로 봤을 때 잘못된 행위입니다. 낙태는 어머니 뱃속의 생명을 함부로 꺼내 죽이는 살인 행위입니다.
현재 낙태법은 입법 공백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낙태가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시작을 인간이 함부로 결정하는 마당에 마지막(안락사)은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까. 낙태 이슈야말로 대선 후보가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판별 방법입니다.
동성 간 성행위는 쾌락과 질병을 확산시키며 정상적 가족제도에 균열을 내려는 행위입니다. 쾌락이 충족되지 않으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서 ‘제3의 성’을 창출했다며 신체까지 절단합니다. 이단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생명을 노략질하는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를 옹호·조장하고 이단 보호 장치로 작동할 차별금지법, 평등법을 두둔하는 후보는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북한의 2599만675명의 영혼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서는 우상을 섬기며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진짜 지옥에 가는 북한 영혼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분단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자’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한만 안전하면 된다는 이기적 평화를 누가 외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형제자매, 부모가 노예 생활을 하는데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한다면 그는 진정한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남한 기독교인에게는 주체사상 아래 신음하며 노예 생활하는 북한 영혼의 흉악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사슬을 풀어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다음 대통령은 복음적 통일의 초석을 놓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참된 종교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선 비천한 우리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 위대한 생명의 서사를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그 심령이 어두워졌습니다. 자기 영혼의 형편을 보지 못하니 육의 모양만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낙태해도 된다고, 동성애와 제3의 성을 인정해도 된다고, 노예 생활하는 북한 주민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생명의 출발과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고 양심을 억압하겠다는 발상입니다.(창 3:4~5)
이런 잘못된 사고의 밑바탕에는 인간을 세포 덩어리로 전락시키고 물건처럼 하찮게 여기는 진화론적 유물론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을 도구로 전락시킨 공산주의와 인간을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기독교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은 성경입니다. 대통령 선거 투표 용지에 도장을 찍을 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투표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입니다. 심지어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는 5월 10일부터 2027년 5월 9일까지 한국을 책임질 차기 대통령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투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