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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사유의 맛



지난 연말, 나도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반가사유상 전시 ‘사유의 방’ 말이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입구의 카피만 읽고는 전시장 앞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유(思惟)를 우리말로 ‘두루 헤아리다’라고 쓴 것도, 그것을 영어로 ‘Time to lose yourself deep in wandering thought’라고 번역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유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한 가지 일에만 생각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가지 외의 다른 것까지 ‘두루’ 생각이 닿아야 한다. 그러므로 골몰히 생각할 수는 있어도 골몰히 사유할 수는 없다. 생각은 주체와 대상과 목적이 단일하고 명확하지만 사유는 그렇지 않다. 사유의 주체는 스스로를 잊거나 심지어 잃어버리기도 한다. 사유의 대상은 넓고, 사유는 웅숭깊고 부드럽게 그 대상들을 어루만진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유의 방’을 ‘A Room of Quiet Contemplation’으로 번역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박물관의 기획은 성공적이어서 신비하고 아름다운 통로에서 관람자를 또 한참 머물게 했다. 내가 만난 두 점의 국보는 그렇게 깊은 곳에 있었다. 납작한 가슴과 배, 굴곡진 양쪽 등, 무릎과 팔꿈치가 만나며 이루는 둥근 삼각의 여백, 살며시 잡을 듯 놓을 듯 발목 위에 놓인 왼손바닥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등의 기울기, 오목한 배와 허벅지가 이루는 상현(上弦)의 곡선을 보았다. 비스듬한 발바닥의 평화, 살포시 미소 얹힌 입술을 보았다.

반가사유상의 오른손 손가락이 턱에 닿는 순간, 손가락이 닿은 그 턱부위만큼 우주가 잠시 출렁거렸을까? 흘러내리는 하의의 주름만큼 바람물결이 일었을까?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머리 뒤에 광배를 달았음직한 툭 튀어나온 촉을 보지 않았다면, 그 방 안에서 내 상상과 사유는 어디로 흘러가버릴지 알 수 없었다. 존재를 붙들어 맨 닻처럼 단단한 촉 덕분에 무사히 전시장을 나와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요즘 뉴스를 들으며 자주 그 방을 떠올린다. 사유는커녕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사는가 싶은 뉴스 속 등장인물들 탓이다. 그런 뉴스를 들을수록 자극 없이 슴슴한 맛이 당긴다. 오늘은 알배추와 무로 간단하게 만드는 요리. 알배추는 잎을 몇 장 떼어 깨끗하게 씻어둔다. 무는 채썰어 소금을 살짝 뿌려 10분쯤 재어둔다. 물기를 제거한 무채는 팬에 기름을 둘러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배춧잎은 앞뒤로 밀가루를 묻히고, 밀가루에 전분을 약간 섞어 묽게 반죽해둔 부침옷을 입혀 노릇하게 부친다. 이제 부친 배춧잎에 볶은 무채를 넣어 손으로 돌돌 말면 그만. 간장에 식초와 조청과 참기름 약간, 그리고 다진 청양고추와 양파, 고소한 통깨를 넣은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겨울 저녁 따끈한 청주 한 잔 곁들이며 반가사유상을 생각하는 일. 그게 혹세무민하는 도사들과 삶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것보다 더 유익할 것임에 틀림없다. 사유의 맛이 있다면 이런 맛일까?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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