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세대 패션 트렌드를 알고 싶으면 무신사나 번개장터를 들여다보면 된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이따금 하는 말이다. 기성세대는 들어본 적도 없는 브랜드의 제품이 무신사에서 빠르게 품절되고, 번개장터에서는 중고 스니커즈가 몇십만원 혹은 몇백만원에 거래된다. 무신사는 스스로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고, 번개장터는 신세계 계열사 등의 외부 투자가 몰린다. 이들이 잘 나가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은 최근 1, 2년새 ‘패션 전문몰’을 눈여겨 보고 있다. 잠재력을 갖춘 주요 고객층인 10~20대가 열광하는 플랫폼들이기 때문이다. 10~20대는 패션 전문몰에서 옷을 사고, 트렌드를 확인하며, 리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른 제품도 구매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이커머스 기업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거래액 2조원을 돌파한 무신사의 성장은 독보적이다. 29CM, 스타일쉐어 등을 인수하고 리셀마켓 솔드아웃을 새롭게 출범하면서 무신사를 포함한 거래액 총합은 2조3000억원을 찍었다. 패션 전문 플랫폼이 2조원대 거래액을 기록하기는 처음이다. 지난해 무신사의 거래액 성장률은 2020년 대비 90%를 넘어섰다. 무신사는 10~20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국내 브랜드의 매출 신장을 핵심 엔진으로 꼽는다. 도프제이슨, 라퍼지스토어, 리, 마크곤잘레스, 예스아이씨, 예일 등 기성세대에게 낯선 브랜드들이 10대의 트렌드를 점령하며 무신사 성장을 견인한다. 럭셔리, 스포츠·아웃도어 의류, 글로벌 컨템포러리 브랜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다른 성장 요인은 ‘리뷰 콘텐츠’다. 무신사에서 10~20대 소비자들은 리뷰로 소통한다. 리뷰 콘텐츠 수는 누적으로 2300만건을 넘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경제가 커지면서 패션 전문몰이 상승 기류를 탄 측면도 있다. 지난해 무신사 스토어에 올라온 후기는 약 960만건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패션몰 리뷰는 ‘정보제공’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품, 사이즈 등에 대한 간단한 평가뿐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링을 보여줄 수 있다. 무신사 스토어의 ‘스타일 후기’에선 전신 코디 사진을 공유할 수 있다. 스타일 후기의 양이 전년 대비 81% 증가했다. 소셜 미디어처럼 다른 소비자와 댓글을 주고받거나 리뷰를 추천하는 기능도 있다. 리뷰 게시판이 일종의 패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다.
리셀 시장에서는 번개장터가 강자로 떠올랐다. 10~20대 중심으로 한정판 거래가 달아오르며 성장했다. 번개장터의 거래액은 2019년 1조원, 2020년 1조3000억원, 지난해 1조7000억원으로 뛰었다. 누적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700만명에 이른다.
신세계그룹의 벤처캐피탈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최근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의 남편인 문성욱 대표가 이끄는 투자 회사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 관계자는 “이용고객 중 MZ세대 비율이 경쟁사 대비 월등히 높다. 차별화된 강점을 보유한 번개장터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번개장터는 패션, 디지털, 레저와 같은 카테고리에서 브랜드 중심 중고거래를 강화하면서 10~20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 중고 골프용품 플랫폼 ‘에스브릿지’ 등을 인수하며 서비스를 강화한 게 주효했다. 지난해에는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더현대서울, 코엑스몰에 ‘BGZT Lab by 번개장터(브그즈트 랩)’를 열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 센터필드에는 명품 중심의 ‘BGZT Collection by 번개장터(브그즈트 컬렉션)’를 오픈했다.
독보적인 패션 전문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면서, 패션 부문은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이 단독으로 성공하기 힘든 영역으로 꼽히고 있다. 10~20대 소비자들이 패션 전문몰 사용에 익숙해지고 충성도가 더욱 높아지면 대형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들을 끌어들이는 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10~20대 소비자 신규 유입을 위해 패션 전문몰에 투자하려는 이유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패션 전문몰은 이들을 대체할 만한 또 다른 플랫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며 “전문몰이 10~20대 소비자를 꽉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어떻게 끌어들여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