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역이라는 말은 냉전시대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나왔다. 베를린 지하철 1호선의 마지막 역인 바르샤우어 브뤼케는 동베를린에 있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서베를린 구간을 달려온 열차는 종점 바로 앞 슐레지세스 토르까지만 운행했고, 샤우어 브뤼케는 유령역(Geisterbahnhof)으로 불렸다. 동베를린을 관통하는 지하철 6·8호선에도 열차가 서지 않는 유령역이 9개나 있었다. 사용자가 없어 문을 닫은 역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하지만 패전 이후 암울한 시간을 보냈던 독일인에게 낡은 전등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유령역은 분단의 아픔을 일깨우는 상징이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베를린의 유령역은 모두 사라졌다. 바르샤우어 브뤼케는 바르샤우어 스트라세로 이름을 바꿔 문을 열었고, 다른 무정차역도 사람들로 붐빈다. 유령역이라는 말은 수요 감소와 시설 노후화로 폐선된 구간의 철거하지 않은 역이라는 의미만 남았다. 느낌도 아예 달라졌다. 뉴욕의 지하철역 코트 스트리트처럼 박물관으로 바뀌거나, 특이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래 찾아가는 숨은 명소로 유명세를 탄다.

우리나라에도 유령역이 적지 않다. 민통선 안에 있어 열차가 못 가는 경원선 철원역과 월정리역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교외선 일영역·송추역, 동해선 제진역·화진포역은 경제성이 없다고 일반 열차가 다니지 않았다. 서울에도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과 9호선 김포공항역의 지하 3층 승강장이 대표적이다. 지하철 5호선 마곡역도 개발을 전제로 건설돼 12년이나 유령역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세월은 흐르고, 이제 유령역이 빛을 본다. 통일의 염원이 담긴 제진역에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다녀갔다. 경기도는 교외선을, 부산시는 동해남부선을 개발의 축으로 되살린다. 서울시도 27일 신설동역 안에 있는 유령 승강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낡은 옛 모습이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쓰이더니 조만간 관광 명소가 될 모양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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