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소녀시대, 여자친구, 세븐틴, 엑소, 마마무, 워너원, 방탄소년단(BTS)….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아이돌이 없다. 김준홍 홍원기 감독이 이끄는 뮤직비디오(MV) 프로덕션 쟈니브로스는 K팝의 역사와 맥을 함께했다. 서태지의 MV를 시작으로 1500여편의 MV를 제작한 쟈니브로스는 올해 21주년을 맞았다. ‘MV 명가’로서 독보적 입지를 다지고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한다.
서울 강남구 쟈니브로스 사무실에서 지난달 21일 김준홍 대표와 김도연 감독을 만났다. 김 대표는 지난 21년을 ‘도장깨기’라고 표현했다. 비주류 록 밴드의 영상을 만들다 주류 K팝 아티스트를 담당하기까지 도전의 연속이었다. 대표 작품으로는 소녀시대의 ‘더 보이즈’, 엑소의 ‘중독’, AOA의 ‘짧은 치마’, 워너원의 ‘에너제틱’, BTS의 ‘호르몬 전쟁’과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 환불원정대의 ‘돈 터치 미’(DON’T TOUCH ME) 등이 있다.
김 대표는 “새로운 흐름의 첫 테스트베드는 항상 우리가 했다”고 전했다. 혁신적 촬영 기법 도입, 새로운 장르의 영상 제작 방식 등은 쟈니브로스가 끌고 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탓에 오프라인 공연을 보지 못하는 K팝 팬들을 위해 아티스트의 방송 출연분을 퍼포먼스 영상으로 제작했다. 퍼포먼스 클립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었다.
시작은 BTS가 미국 온라인 라디오 방송사 아이하트라디오에 출연한 퍼포먼스 영상이었다. 김 대표는 “(영상을) MV처럼 찍어야 할지 공연처럼 찍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공연의 형태로 촬영하되 제작은 MV처럼 하는 ‘믹스매치’를 시도했고,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트와이스,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앞둔 아티스트의 의뢰가 줄줄이 이어졌다.
MV 제작은 콘셉트가 중요하다. 과감한 도전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도 콘셉트에 대해 고민하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김 대표는 차를 타고 가다 공사장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있다. 공사장 경고등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촬영에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 청계천 상가에서 경고등을 사와 카메라 옆에 뒀다. 타워크레인을 보면서 ‘저런 움직임을 촬영에 차용할 수 있을까’하며 새로운 촬영 기법을 고민한 일도 있다.
촬영 현장에서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짜도 날씨와 아티스트의 컨디션 등 현장에서 부딪히는 변수가 많다. 김 감독은 “한강공원의 하수구 수로에서 촬영하다가 갑자기 오수가 터져 나와 오물을 그대로 뒤집어썼다”며 “그 순간에도 카메라부터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고 했다.
해외 촬영은 변수가 더 많다. 필리핀 군부대를 섭외해 전투기 앞에서 안무 영상을 촬영하려 했는데 현장에 작업하러 가니 비행장에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다. 하필 그날 중국과 영토분쟁으로 전투기들이 총출동했다. 민항기 격납고에서 일부를 겨우 찍고, 한국에서 세트장을 만들어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디트로이트로 MV 촬영을 하러 갔는데 도시가 파산했다. 질서가 무너져 행인조차 없었다. 상점 유리창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했다. 그래도 현지 로케이션을 포기할 수 없어 경찰의 보호 아래 촬영을 마쳤다.
아프리카에서 사자들과 마주하며 촬영하던 순간은 지금 떠올려도 아찔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조련사가 ‘사자는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무시하니까 조심하라’고 조언했는데 앵글이 나오지 않아 자세를 낮춰야 했다”며 “무서워도 촬영을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쟈니브로스가 함께한 K팝의 세계적 흥행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김 대표는 “제작비용이 많이 오른 반면 코로나19로 기획사들의 수입이 많이 오르지 못했다. 길게 보면 K팝 환경이 좋을 것 같진 않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까지 K팝이 아티스트 위주였다면 이제 콘텐츠 제작자들이 K팝의 부흥을 이끌어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쟈니브로스는 영화, 리얼리티 예능, 매니지먼트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와 함께 ‘도시괴담’을 제작했고 좋은 반응에 힘입어 ‘도시괴담2’를 준비 중이다. 자체 레이블(ZB Label)에선 가수 ‘알렉사’(AleXa)를 키워나가고 있다. 2019년 데뷔한 알렉사는 인공지능(AI)을 콘셉트로 한다. 알렉사의 기획은 모두 쟈니브로스가 했다.
MV 제작사가 영화를 제작하고 소속 가수까지 데뷔시키는 일은 업계에서 처음 있는 시도다. 김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은 암벽을 등반하는 과정이다. 핀을 꽂으면서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창립 후) 처음 10년은 작품의 질을 높이면서 회사의 형태를 잡았고, 이후 10년은 콘텐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중점을 뒀다”며 “앞으로 20년은 다양한 콘텐츠 제작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알렉사를 처음 기획할 때, 기존 기획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거란 우려가 있었다. 김 대표는 알렉사의 데뷔가 단순히 수익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20년간 많은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정작 쟈니브로스의 지식재산권(IP)은 없었다. 알렉사 기획은 자체 IP 확보를 위한 전략이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쟈니브로스는 미디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 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쟈니브로스에는 자회사까지 포함해 60여명의 직원이 일한다. 스웨덴, 칠레, 중국 출신 등 외국인 직원도 다수다. 처음에 남미 K팝 팬들을 위해 시작한 ‘쟈니TV’ 채널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김 대표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쟈니브로스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중고등학교 때 취미를 살려 직업을 선택했다. 그는 “사진이 예술이냐, 기술이냐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촬영감독은 기술자이면서 예술자라고 생각한다”며 “같은 피사체도 촬영감독의 DNA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점이 영상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성인이 된 후 드라마를 보다가 막연히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업계에 뛰어들었다.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다른 생업을 하던 중이었다. 2003년 현장에서 업계 선배인 김 대표를 만난 후 지금까지 합을 맞춰왔다. 일을 배우다가 대학에 진학해 공부도 했다. 그는 쟈니브로스의 자회사 ‘롤캠미디어’에서 K팝 아티스트의 퍼포먼스, 스페셜클립 영상을 제작한다. 롤캠미디어로서 입지를 다진 뒤 성공적으로 독립하는 게 목표다.
회사 이름 쟈니브로스는 웃기는 녀석들, 바보 형제라는 의미다. 키치(Kitsch)하면서도 철이 들지 않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올해 사업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최종적으론 기업공개(IPO)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멋있어서”라고 답했다. 업계의 전설로 남고 싶다는 그의 답변이 ‘쟈니브로스’다웠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