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 이후 독립 열기는 식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했다. 부산에서 만세 시위가 시작된 건 열흘 후인 11일이었다. 부산 3·11 만세 운동의 시발점은 일신여학교였다.
당시 교장인 마가렛 데이비스(1887~1963) 선교사는 학생들에게 독립의 꿈을 심은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만세 시위를 이끌고 시위 참가 학생들을 보호하다 일경에 체포됐다. 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지만 외국인에게는 이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됐다. 외국인이 만세 시위를 주도한 건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예다.
일제 강점기 내내 그는 일제와 맞섰다. 결국 1940년 3월 자신을 파송한 호주장로교회가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한 뒤 일신여학교까지 폐교되면서 호주로 귀국했다.
저항의 구심점이던 일신여학교 설립자이자 기숙사 사감이던 이사벨라 멘지스(1856~1935) 선교사와 데이지 호킹(1888~1971) 선교사도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멘지스는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의 깃대를 학생들에게 제공했고 시위 후 일경의 압박이 심해지자 보관하던 태극기를 소각하고 학생들까지 보호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그는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호킹 선교사도 학생들의 만세 시위를 도운 뒤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지만, 데이비스와 마찬가지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3·1운동 103주년을 맞은 올해 3·1절을 기념해 국가보훈처가 부산 3·11 만세 운동을 이끈 데이비스(건국훈장 애족장)와 멘지스(건국포장) 호킹(건국포장) 선교사를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외국인은 72명이지만 호주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명득 영등포산업선교회 국제연대국 국장은 28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부산 독립운동의 출발점이자 구심점이던 일신여학교에서만 그동안 12명의 독립운동가가 나왔다”면서 “이번에 호주인 3명이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호주인들의 사례가 추가로 발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연합교회가 우리나라로 파송한 선교사다. 양 국장은 “한·호 수교 61주년을 맞아 교육과 의료, 복지,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까지 기여했던 호주교회와 호주인들의 헌신 역사를 기억하고 한·호 교류의 지평을 더욱 확대하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