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주최 대학생 대상 저널리즘 비평 공모에서 필자가 국민일보에 연재한 시리즈 ‘궁금한 미술’을 분석했던 대학생은 언론사 부서 중 ‘정경사’(정치·경제·사회부를 합쳐 부르는 말)가 ‘인싸’(인사이더)라면 문화부는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비유했다. 현실이 그렇다. 문화 분야는 언론사 위계 내에서 ‘찬밥’이다. 우리 사회 잣대가 그렇지 않나. 문화는 산업과 연결돼 돈 냄새가 날 때만 관심사가 된다.
문재인정부에서도 문화는 찬밥이었다. 진보 진영 문화계 원로조차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는 문화예술인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도 했는데, 이 정부에선 시늉조차 없었다. 문화 자체를 무시한다”라고 토로했다. 문화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의 ‘장식’으로 쓰일 때나 관심사가 됐다. 또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세계적 주목을 받자 그제야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불렀을 뿐이다.
그러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에서 1월 중순 문화 공약을 발표하니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신선했다. 중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다. ‘어떻게’에 방점이 찍힌 실천적 목표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표 문화 공약 중 눈에 들어온 것은 ‘문화 세계 2강 도약’ 같은 구호가 아니었다. ‘문화예산 2.5% 확충’과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연 100만원 지급’ 등 실천적 공약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문화에 대한 ‘대접’은 전임 박근혜정부가 했다. ‘문화융성’을 경제부흥, 국민행복과 함께 3대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문화예산(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예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콘텐츠 예산 등을 합친 것)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출범 당시 1.47%에서 임기 마지막 해인 2018년까지 2%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예산이 집행되며 목표 수치를 향해 갔다. 1.72%까지 끌어올렸지만 알다시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며 재정의 문화 지출 확대는 멈췄다.
지난해 BTS가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대상을 받고, ‘오징어 게임’ ‘지옥’ 등 넷플릭스 드라마가 글로벌 돌풍을 일으키는 등 K컬처가 파워를 드러내자 “이게 다 박근혜정부 때 문화에 투자한 덕분”이라고 농담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이재명 후보가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 위상에 걸맞게 문화재정 2.5%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으로 내건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문화예술인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문화 복지정책이 문화 바우처 등 향유자 중심의 성격이었다면 마침내 문화 생산자까지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연 100만원은 큰 금액이 아니다. 월로 따지면 8만3000원으로 통신비 수준이다. 한국예술종합대 박성혜 교수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본소득을 지급받으려면 예술인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필요조건이 갖춰진 후에는 통상적인 사회안전망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작가 A씨는 “예술인도 청년, 농어촌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지켜야 하는 대상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평했다.
모든 것이 자본 논리로 굴러가는 상황에서 이윤 추구와 거리가 먼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당장 연명이 어렵다. 예술인 기본소득은 경기도의 성남·동두천·의왕·여주·연천 등 5개 시군에서 올해 시범 사업에 들어간다. 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는 문화 공약을 따로 발표하지 않았다. 홈페이지 공약엔 ‘보편적 문화복지 서비스’ 등 추상적 개념이 나열돼 있다. 고민의 흔적이 덜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누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문화예술인들은 정서적으로 민주당 공약이 살가울 수밖에 없다”는 문화계 인사의 말을 새겨들었으면 싶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