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감염병인 코로나19와 만성질환인 암의 경중이나 피해 정도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다만 생명과 직결되는 사망률로 따진다면 암이 코로나19보다 훨씬 무섭다. 가장 최근 사망원인 통계에 의하면 2020년 한 해 동안 8만2204명이 암으로 숨졌다. 2위 심장질환(3만2347명), 3위 폐렴(2만2257명) 등 그 아래 사망원인들과 격차가 크다. 암은 2000년 이후 20년 넘게 한국인 사망 원인 1위다.
반면 코로나19 감염에 의한 누적 사망자는 1만3432명(23일 0시 기준 치명률 0.13%)에 그친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 영향으로 전 인구의 약 20%가 감염됐어도 독성이 낮아 고령층·기저질환자 외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 급성 감염병은 대유행 시기를 지나면 어느 정도 위험에서 벗어나고 피해도 줄어든다. 이에 비해 암은 대개 40세 이상에서 발병 위험이 크고 한번 걸리면 1년 이상 치료 기간이 필요하며 큰 고통과 비용이 따른다. 기대수명까지 살 때 국민 37% 이상이 암에 걸린다고 하니 평생을 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 대응에 전력하느라 암을 비롯한 일반질환 진료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조사 참여국의 암 검진 및 치료 서비스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과 비교해 최소 5%에서 최대 50% 수준의 중단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우려스럽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의료이용 제한으로 암 조기 발견 및 치료, 합병증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2020년 국가암검진 수검률은 49.2%로 전년보다 6.4% 포인트 떨어졌다. 2019년까지 증가 추세이던 암 환자의 입원 진료량은 2020년 6~22% 줄었다. 암 진단과 치료 시기가 늦어지면 그만큼 중증도가 악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말기 암 환자들의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도 방해받고 있다. 전국 88개 완화의료전문기관이 호스피스 입원 병동을 갖추고 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은 국공립병원들이다. 그런데 코로나 병상 확보가 시급한 지방의료원들이 호스피스 병상을 코로나 병상으로 전환하면서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들의 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암 예방에 대한 국민 인식과 실천 노력도 느슨해졌다. 국립암센터 조사 결과 지난해 10대 암예방수칙의 인식률과 실천율은 각각 80.3%와 39.3%로 2018년(각 83%, 46.2%)보다 낮아졌다.
문제는 이런 암 예방 노력의 부족이나 암 진단·치료 지연의 여파가 앞으로 수년간 암 관리 서비스 제공 전반에 미칠 것이란 점이다. 심뇌혈관질환 등 다른 중증질환들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명 위협 요인 중 암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 오미크론 대유행을 앞서 겪고 다소 소강상태에 놓인 나라들에서 암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긍정적이다. WHO 유럽지역 한스 클루게 사무처장은 지난 2월 세계 암의 날 연설에서 “코로나19 대응으로 미뤄뒀던 만성질환 관리, 특히 전주기적 암 관리(예방-검진-진단-치료-완화의료)를 포함한 필수적 보건의료서비스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미크론 대유행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한국도 암 관리에 경각심을 갖고 의료 역량을 재정비할 때다. 무엇보다 앞으로 반복될 감염병 팬데믹을 대비해 암 관리 체계를 확실히 구축해 놓을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암 치료와 관리를 필요로 하거나 의료 이용에 제한을 받는 환자들을 위해 지역사회 기반이나 재택 암 관리 같은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등 의료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