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건축계에서는 ‘도시계획의 생태주의’ 등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한 실천적 고민이 잇따른다. 건축 행위 자체가 엄청난 폐기물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생태 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 2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전체 폐기물 가운데 건설 폐기물의 비중이 44.5%로 가장 높다. 생활 폐기물의 4배 이상 된다. 그러다 보니 건축계에서는 “저에너지 사용, 저탄소 배출을 목표로 고효율 자재를 사용하는 ‘액티브 건축’, 자연 채광과 자연 환기를 활용하는 ‘패시브 건축’ 등 다양한 노력을 한다. 아파트 건축도 조립식으로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남상문 건축가는 전한다.
미술계는 어떤가. 이미 세계 미술계에서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에 기후 문제와 생태적 재앙을 다룬 작품이 대거 나오는 등 선도적인 고민이 있었다. 그해 황금사자상도 “기후변화 문제를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룬” 리투아니아에 돌아갔다.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나서야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태를 주제로 삼은 전시는 지난 2년간 ‘유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빈도가 높았다.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전시 주제만 생태로 할 게 아니라 전시 자체를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미술계 고민이 진전되고 있느냐다. 전시는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미술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히려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쓰레기 양산에 앞장서고 있다”라는 성토가 나왔다. “3개월 전시하고 버릴 인테리어에 쓸 돈이 있으면 작품 구입 등 보다 생산적인 데 쓰라”는 말도 나왔다. 제목을 거명하기 힘들 만큼 “그곳 전시가 다 그래”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전시장 가벽은 동선을 구분 짓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과도하면 장식이 돼 작품 몰입을 저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개월 후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가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990~1600㎡(300∼500평) 규모의 전시라면 평균 5~7t의 폐기물이 나온다. 가벽에 쓰이는 석고보드, 합판, 철골, 벽에 바른 시트지 등은 전시 후에는 그대로 뜯겨진 채 트럭에 실려 나간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공립미술관이나 사립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받쳐주는 데서 오는 역설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1개를 꾸리는 데 쓰는 예산은 작가 보수, 작품 제작비, 운송료, 보험료, 전시장 조성비, 홍보비 등 수억원이 든다. 이 가운데 전시장에 페인트칠을 하고 가벽을 설치하고 시트지를 붙이는 등 전시장 조성(연출)에 1억원가량이 든다. 어떤 경우 전시 예산의 3분의 1이 전시장 연출에 쓰인다. 국립기관에서 전시장 조성에 쓰는 돈은 부산 대구 등 공공미술관이 전체 전시에 쓰는 돈보다 많다. 부산시립미술관의 경우 전시 예산이 통상 6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선이다.
가벽 등은 한 번 쓰고 나면 재활용이 쉽지 않다. 미술계 관계자는 “가벽은 다 부순다고 보는 게 맞는다. 큐레이터들이 직전 전시가 자신의 전시와 개념이 맞지 않는다며 새로 공간을 조성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경 측면에선 비판받아야 할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가 정석처럼 돼 돈 없는 민간 미술관에조차 모방 욕망을 불러일으키니 더 문제다.
미술평론가 최열씨는 “기업도 주가를 관리하기 위해 탄소중립 방안을 실천하는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하고 있다”며 “이것은 큐레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관장의 정책 철학과 정책 비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임에 성공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만간 ‘2022-2024 비전’을 발표한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