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전기가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녹슨 슬픔들이 떠오른다
어두운 복도를 겁에 질린 아이가 뛰어간다
…
물이 심장보다 높이 차오를 때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깊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무의식중에 손을 머리 위로 추켜올린다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지고
가라앉으면 안 되는 것들이 가라앉았다
꿈속의 얼굴들은 반죽처럼 흘러내렸다
덜 지운 낙서처럼 흐릿하고 지저분했다
누군가가 구겨버린 꿈
누군가가 짓밟아버린 꿈
…
-신철규 시집 '심장보다 높이' 중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전기가 나가고 그 순간 “녹슨 슬픔들”이 떠오른다. “겁에 질린 아이”를, “물이 심장보다 높이 차오를 때”를 생각하게 된다.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지고 가라앉으면 안 되는 것들이 가라앉았다.” 다시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