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이라고 하면 으레 신문 구독, 잡지 구독을 떠올릴 것이다. 과거에는 매일 배달해주는 신문의 구독료를 달마다 신문배달원이 받아 가면서 영수증을 끊어주었다. 그 뒤로는 지로용지가 오고, 그다음엔 자동이체로 구독료를 내다가 인터넷 검색 업체들이 신문 기사를 제공하면서부터 종이 신문 구독이 빠르게 줄었다.
신문 구독이 많이 사라지면서 ‘구독’이라는 말도 자취를 감추는 것 아닐까 했었는데, 어느 날 뜻밖의 동네에서 다시 이 말을 만나게 됐다. 비싼 옷을 구독하고, 화장품을 구독하고 심지어는 먹고 마시는 것도 구독한다는 구독 경제(購讀經濟·subscription economy)가 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무렵부터 화장품을 달마다 정기적으로 배송받아 사용하는 상거래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대체로 1개월 단위로 정해진 돈을 내고 정기적인 서비스나 물품을 이용하는 상거래 방식을 가리킨다.
바쁘게 사는 시대에 매장에 들러 뭘 사는 것이 번거롭고, 인터넷을 이용해 뭘 사려면 손품에 눈품을 팔아야 해서 더 귀찮은 세상이니 때가 되면 턱턱 알아서 가져다주는 이런 장사 방법이 환영받을 만하다. 달마다 종류를 바꿔가면서 고급 외제차를 빌려 타는 자동차 구독도 이뤄진다니 초기 투자에 발 묶이지 않고 다양하게 써볼 수 있는 장점도 구독 경제의 매력이다. 여러 술집이나 커피집을 한 달 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술 구독, 커피 구독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구독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이라는 풀이가 올라 있다. 우리가 아는 한자인 ‘읽을 독(讀)’은 활자로 된 기록물에 주로 쓰는 글자다. 오독, 정독, 속독, 다독 등의 예를 생각할 수 있다. 인터넷 영상 구독이야 눈을 써서 정보를 얻는 대상이 활자 매체에서 영상 매체로 바뀌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먹고 마시고 바르는 것까지 구독한다는 건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확실히 잘못된 용법이다.
그렇지만 이는 새로운 현상을 가리키는 말을 정할 때 생길 수 있는, 어찌 보면 후세의 불가피한 오류 아닐까. 영어 단어 ‘subscribe’는 ‘구독하다, 가입하다, 청약하다, 기부하다’ 따위의 여러 가지 뜻이 있고, 그 명사형 ‘subscription’은 ‘구독료, 구독, 기부금, 가입, 모금’ 등으로 번역된다. 맥이 닿긴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어감이나 의미가 다른 여러 행위를 영어에서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꼭 활자 매체만이 아니더라도 이용자로 등록해 정기적으로 돈을 내는 ‘subscription economy’에 딱 맞는 우리말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가장 비슷해 보이는 과거의 ‘구독’을 쓰기 시작한 것이리라.
논리적인 어휘가 익히기에 좋고 소통에도 좋겠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비논리적인 어휘들 가운데 소통력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미팅’에서 가지 친 ‘소개팅’이나 ‘채팅’에서 가지 친 ‘눈팅’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버스 카드 충전과 전화기 충전의 ‘충전’은 한자가 다르지만 소리가 같고 의미가 비슷해 사람들은 같은 말이겠거니 하며 별생각 없이 사용한다. 외국어 신조어의 번역어를 만들 때 되도록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겠지만 그 경계를 어쩔 수 없이 또는 과감히 넘어서야 할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용감하게 새로운 말을 만들어 보자.
이제야 떠오르는데 우리 집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경남 어디 산골에 닭을 풀어 먹이는 양계장에서 3주마다 40개씩 달걀을 받아먹는다. 달걀값은 알아채기도 전에 자동이체로 나간다. 아, 이게 구독 경제였구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