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과 구소련에는 7만개에 달하는 핵탄두가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핵무기 확보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61년 구소련이 ‘차르 봄바’라는 열핵폭탄(수소폭탄) 제작에 성공하자 50년대 미국이 누렸던 핵 우위가 붕괴됐고, 핵 경쟁은 무한으로 치달았다. 이때 나온 개념이 핵억지력이다. 핵으로 선제공격을 받더라도 상대가 정상 사회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2차 공격을 할 수 있다면 핵무기를 쓰지 못한다는 게 핵심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로버트 맥나마라는 미국이 선제 공격을 받은 뒤에도 소련 산업시설의 50%와 국민의 25%를 파괴할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미국과 러시아가 운용 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대부분 이때 개발됐다. 미국의 유일한 ICBM인 미니트맨Ⅲ는 64년 개발에 착수해 70년대 배치됐다. 구소련이 미니트맨 시리즈에 맞서 개발한 도시파괴용 대형 ICBM인 R36은 66년 개발을 시작했다. 50년이 넘은 무기체계인 것이다. 그러면서 양국은 87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 91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2010년 New STRAT를 맺으며 핵군축에 나섰다. 현재 인류가 보유한 핵탄두는 1만5000개 정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어리석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낡은 미사일 시스템에 국가의 명운을 걸 수 없다는 강경론이 등장했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 러시아의 핵 전력 강화, 북한과 이란의 핵·미사일 개발에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지상배치전략억제전력(GBSD)으로 불리는 ICBM 현대화 계획에 14조50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센티넬(감시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미사일은 2036년 실전 배치된다. 러시아는 그제 구형 ICBM을 대체할 RS28 사르맛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차세대 ICBM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군사력 1~3위 국가에 둘러쌓인 우리로서는 도무지 반갑지 않은 소식들이다.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