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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와인의 공통점, 순수한 즐거움”

충주 수안보면에 양조장을 지어 와인을 만들며 글을 쓰는 신이현 작가가 지난 25일 오후 포도밭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양조장 주변을 둘러싼 포도밭 속에서는 호밀이 자라고 있다. 포도나무와 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충주=이한형 기자


신이현 작가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왼쪽)가 양조장에서 자신들이 만든 와인을 들고 있다. 충주=이한형 기자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원통마을. 근처에 온천이 있고 사과와 복숭아 농사를 많이 하는 동네다. 좁다란 시골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니 벽면이 온통 하얀 이층집이 나온다. 논이었다가 작약밭이었다가 이제는 양조장이 된 곳, 와인을 만드는 ‘작은 알자스’다.

건물 앞으로는 시야가 시원하게 트였다. 하늘 아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그 속에 작은 마을이 순하게 들어앉았다. 양조장에는 아직 간판이 없다. 마당의 잔디는 어제 심은 듯 어색하고 1층 양조장도 설비가 다 끝나지 않았다. 양조장 옆 작은 건물, 앞으로 갤러리가 될 공간에 건축자재가 쌓여 있다. 양조장을 둘러싼 포도밭에는 1000그루 넘는 포도나무가 심겨 있다. 포도밭 사이에 보리를 닮은 호밀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양조장 건물 2층에서 소설가 신이현(57)이 웃으며 내려왔다. 오전에 일할 때 입었던 옷 그대로에 맨발이다. 2층은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다.

“도미니크(남편)가 농사를 짓다 보니까 밭이 필요하고 양조장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 공간을 지었다.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큰 공간이 생겼는데, 여기를 개인적으로만 쓰긴 좀 아깝다. 마을과 지역과 농부와 예술가들이 같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소설가가 만든 와이너리 ‘작은 알자스’는 양조장, 밭, 집, 게스트룸, 갤러리 등으로 구성됐다. 다음 달 공사가 완전히 끝나면 주말마다 포도밭과 양조장 체험공간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6월에는 예술축제가 열린다. 셰프들이 이 동네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마련하고, 화가들이 밭에 설치미술 작품도 전시할 예정이다.

신이현은 “우리는 술을 빚지만 문화도 빚는다”면서 “양조장을 배경으로 여러 문화 행사를 하고 게스트룸은 예술가들에게 제공해 자연에서 쉬며 영감을 얻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농업은 힘들다, 농촌은 어렵다, 그런 얘기만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올시다”라며 “농촌과 농업을 예술적으로 문화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 예술가들과 함께 그런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농업과 농촌이 이렇게 문화적이면서 고급스럽고 아름답구나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왜 예술가들은 도시에만 사는지 모르겠다. 농촌은 재미있고 농사는 행복한 일이다. 예술가들이 시골로 와서 농사도 짓고 땅도 만져보면서 농업과 농촌을 주제로 창작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던 신이현은 프랑스에서 곱슬머리의 키 큰 남자 도미니크를 만나 결혼한 후 파리와 남편의 고향인 알자스, 캄보디아 프놈펜, 서울을 오가며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한국에 다시 들어와 충주에 터전을 잡은 것은 6년 전. 엔지니어였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하고 양조학교에 들어갔다. “죽어도 농부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의 뜻을 신이현은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생을 바꿀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한국에서 농사 짓는 유일한 프랑스인, 양조장 대표가 된 소설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 도전이 맺은 결실이 ‘작은 알자스’다. 신이현은 양조장을 만들기까지 이야기를 담은 책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더숲)을 다음 달 출간한다.

“우리가 이 나이에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책은 한 부부가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서 일과 사는 나라를 바꾼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 프랑스 농부의 특별한 농사법,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와인 양조 이야기가 더해진다.

“우리가 인생을 바꿨는데 그게 마침 농사였다. 도미니크의 농사법은 생명역동농법이라고 하는데, 언제나 땅을 행복하게 하는 걸 제일 먼저 생각한다. 농사는 나무만 키우는 게 아니라 땅도 키우는 거라고 늘 말한다. 그걸 기록해보고 싶었다. 도미니크를 따라가는 내 인생의 고달픔과 즐거움도 담아서.”

부부는 좋은 와인은 농사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직접 나무를 키우고 생과일을 수확해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와인을 만든다. 부부는 농사도 내추럴, 와인도 내추럴, 인생도 내추럴을 추구한다. 책 제목에도 사용한 ‘내추럴’이라는 말에 대해 신이현은 “첨가된 것이 없다는 것, 장식이 없다는 것, 자연이 준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양조장에서 신이현의 문학도 다시 피어날까. 신이현은 2층 생활공간을 꾸미면서 작은 집필실을 마련했다. 단편 소설도 한 편 청탁을 받아 쓰는 중이라고 한다. “엄청 고민하다가 청탁을 수락했다. 이걸 안 받으면 소설을 영영 못 쓰게 될까 봐.”

그는 작가가 되길 원했지만 정작 작가가 된 후에는 치열하게 쓰지 못했다고 했다.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는 동안 소설과 에세이집 몇 권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크지 않았다. 그는 “문학을 하면서도 문학에서 소외된 느낌이었다. 문학에 화가 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과 전혀 다른 농사를 하다 보니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지더라”며 “이번 단편을 계기로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과 와인이 비슷하다는 말도 했다. “소설은 안 읽어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소설을 읽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는 순간,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늘 소설 읽는 사람을 좋아했다. 이익이나 발전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안 마셔도 된다. 그런데 와인을 마시면 엄청 행복하다. 소설도 그렇고 와인도 그렇고 어떤 이익도 없다. 순수한 즐거움이다.”

신이현은 낮에는 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남편의 농사 이야기를 기록한 ‘도미의 한국 농부 생활’(가제)이란 책도 쓰고 있다. “쓰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이제까지 작가 생활을 한 게 남편이나 농사 이야기를 쓰려고 연습해왔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농사나 와인, 음식 등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농업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더 많이 얘기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5월이 되면 소설가의 충주 양조장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신이현은 와인과 책을 들고 도시 사람들을 부를 것이다. 내추럴하게 살자고 권하면서.

“우리의 꿈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완결되지 않은 채 불안하게 진행 중인 지금이 나쁘진 않다. 우리는 이미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충주=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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