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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장애인이 없는 교회



최근 만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는 장애인 교회가 정말 싫다”고 했다. 장애인 교회 사역자들이 실천하는 사랑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니었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장애인에게 배타적이었으면 장애인 교회가 따로 있겠느냐는 한탄이었다. 손 교수는 언젠가 서울 남산의 한 시각장애인 교회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교회가 나왔다. 앞을 볼 수 없는 성도들이 지팡이를 짚고 교회로 향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속이 상하더라. 한국의 많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축복=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힘없고 돈 없는 장애인은 이런 분위기 탓에 교회에 오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2017년 출간된 책 ‘장애인과 함께 가는 교회’를 보면 특수교회로 구분되는 국내 장애인 교회는 153곳이며, 이와 별개로 집계된 시각장애인 교회와 농아인 교회는 각각 57곳, 152곳이다. 이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의 선의는 존중돼야 마땅하며, 농아인 교회처럼 얼마간 특수성을 띠는 교회의 필요성도 부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손 교수의 말마따나 장애인 교회의 존재는 생각해봄 직한 문제다. 장애인 교회가 많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장애인이 한국의 ‘일반적인 교회’에 출석할 때 심리적인 허들을 맞닥뜨림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대다수 대형교회는 장애 유형에 따라 다양한 장애인 부서를 두고 있다. 이들 부서는 자신들만의 예배를 드리곤 한다. 한데 ‘장애인과 함께 가는 교회’에는 “장애인 부서가 설립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임이 틀림없다”면서도 이런 비판이 적혀 있다. “(따로 예배를 드리는 탓에)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한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기 어려웠으며 여전히 도움을 받는 시혜적 대상으로 여겨졌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장애인 부서를 평가한다면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장애인을 향한 냉대와 편견의 시선이 생겨난 건 근대에 접어들면서다. 정창권 고려대 초빙교수가 쓴 ‘근대 장애인사’를 보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장애인은 “양지에서 비교적 떳떳하게”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시절 모든 왕대(王代)엔 장애인 관료가 한두 명쯤은 있었고 장애인과 관련된 문서엔 잔질(殘疾) 폐질(廢疾) 독질(篤疾) 같은 단어가 사용되곤 했다. 장애를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 정도로 여겼던 거다.

그런데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통과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장애인을 가리킬 때 일본어 ‘후구샤(不具者)’를 그대로 가져와 불구자라는 단어가 쓰이게 됐다. 불구자엔 ‘기능의 결여’, 즉 뭔가를 갖추지 못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 스며 있다. 정 교수는 “조선 시대 장애인은 몸이 불편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한없이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취급됐다”고 주장한다.

19세기 말에 이뤄진 한국교회의 출발은 이렇듯 한국인이 장애인을 낮잡아보기 시작한 때와 절묘하게 포개진다. 어쩌면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보듬는 데 소홀했을 수도 있을 성싶다.

장애인 가운데 크리스천 비율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 관련 자료를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복지재단 등에 문의해 약 20년 전 이뤄진 조사 내용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수치는 약 9%였다. 비슷한 시기인 200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드러난 국내 전체 개신교인 비율은 21%다. 오래전 집계된 데이터이지만 지금도 그 차이는 여전할 것 같다. 교회에 장애인이 없거나 적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우리 모두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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