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또 떨어졌다. 최근 국민일보와 사귐과섬김 코디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000명에게 ‘한국교회(개신교)를 어느 정도 신뢰하나’라고 물었을 때 18.1%만 ‘신뢰한다’고 답했다. 2년 전 31.8%, 지난해 20.9%에 이어 또다시 추락한 것이다. 코로나와 대선 기간이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더 충격적인 결과는 종교별로 나타난 이미지였다. 조사에서는 주요 종교의 상징적 이미지를 단어로 분석했는데 기독교를 대표하는 핵심 단어는 ‘배타적’이란 어휘였다. 그 주변엔 ‘위선적인’ ‘이기적인’ ‘물질적인’ 등의 말도 포진돼 있었다. 반면 천주교와 불교를 상징하는 핵심 단어는 ‘도덕적’ ‘헌신적’ ‘포용적’ ‘상생하는’ 등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를 보여주는 핵심 단어에 마땅히 나와야 할 사랑이나 화평 겸손 같은 말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은 신자들과 교회 공동체에 이 같은 결과는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이런 판단을 받은 것에 대해 억울함도 있다. 극소수의 일탈을 언론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며 비판 기사를 쏟아내 기독교를 혐오하게 만든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신천지 등 이단·사이비를 교회와 구분 못 하는 일반 국민의 무지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본다. 기독교 연합기관들이 언론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한국교회 전체가 어려운데 굳이 이런 부정적인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었겠냐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어떤 기관이 했더라도 그 결과는 비슷하게 도출됐을 것이다. 신뢰도나 이미지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아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설문조사 따위로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세상 속 기독교인이 빛과 소금으로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도구는 될 수 있다. 예수님도 분명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주어진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와 기독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 길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감사하게도 이번 설문조사에는 교회가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영역까지도 다뤘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주고 사회적 약자를 도와 달라는 요청이다. 교회는 이 같은 요구에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21세기의 한복판을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사랑의 가치를 최우선에 놓고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사랑이야말로 기독교인을 상징하는 핵심 단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리나 신조는 신성하다. 믿음도 중요하다. 신비한 체험도 중요하다. 섬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을지라도,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을지라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 시대 최고 복음주의 목회자요 신학자였던 존 스토트가 언급한 것처럼 사랑은 단순한 낭만이나 성애가 아니며 감상이나 감정도 아니다. 그것은 적극적인 태도와 구체적인 행동이며,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으로 이끈다. 감사한 것은 세계사에서 이런 사랑의 열매가 익어 완숙된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나사렛 예수다. 그분은 자기 원수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줌으로써 누구도 하지 못한 사랑을 완성했다. 다시 힘을 내자. 예수만 바라보자.
신상목 종교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