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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강정호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유격수다. 2014년까지 키움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이듬해에는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음주운전이 야구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은 강정호는 2016년에도 다시 음주운전에 도로시설물 파손 사고까지 냈다. 강정호는 국내 복귀를 시도했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허락하지 않았다. KBO는 “죄질이 나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토대로 하는 스포츠에서 윤리적·도덕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이유 등을 언급했다. 아직도 그를 용서하지 않은 여론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인다.

강정호로서는 야속할 수도 있겠다. 처벌을 다 받고 사과도 했는데 한때의 실수로 한국의 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없으니 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되뇌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진심 어린 참회가 선행돼야 한다. 아직 여론은 그의 사과에 진심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에 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간디의 자서전에 나온다고 한다. 물론 성경은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마저 사랑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가르친다. 그렇더라도 성경은 죄와 죄인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죄와 죄인을 다르게 대해야 한다고 명시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인간에게는 사랑을, 죄에는 증오를’이라는 말을 남겼다. 조직신학자 김진혁은 “죄는 미워하지만 죄를 저지른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독교 정신이 절묘하게 요약돼 있다”고 평했다.

인간이 죄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넘버3’에서 마동팔 검사는 “솔직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르는 X 같은 XX들이 나쁜 거지”라고 핏대를 높인다. 누구나 죄를 저지른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마련이다.

죄인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강요는 진정한 용서를 불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최근 20년간 범죄 피해자의 심리 분석과 상담을 해 온 김태경 서원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용서하지 않을 권리’에서 “용서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범죄 피해자들에게 용서란 치료를 통해 회복한 후 이뤄지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행동”이라면서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처음부터 용서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는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며 “무엇보다 피해자의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하는 데 있다”고 호소했다.

어렵고 힘들다고 용서를 포기해선 안 된다. 용서가 없다면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얼마 전 용서의 숭고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1990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이 경찰의 가혹 행위에 억지 자백한 자신들을 기소하고,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주임검사를 용서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무릎을 꿇고 사죄한 주임검사를 용서하며 “더 미워하며 힘들어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이미 진범까지도 용서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는 주교관에서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을 위해 선물로 준 것이라고 헌병에게 거짓 증언을 하고 은촛대를 덤으로 주기까지 했다. 용서의 은혜를 입은 장발장의 인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4번의 탈옥을 시도하다 실패해 결국 19년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은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마들렌으로 개명한 장발장의 이후 삶은 정의와 약자를 위한 것이었다. 용서는 증오에서 해방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힘을 갖고 있다.

맹경환 뉴콘텐츠팀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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