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찾은 서울 강동구의 한 화실. 발달장애가 있는 작가 김성찬(24)씨는 그림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캔버스에 담긴 밑그림은 미국 뉴욕의 관광 명소 브루클린 다리. 김씨에게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물었으나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김씨는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왜 다리를 그리는지 물었을 때는 “다리를 그리는 게 좋아요”라고 짧게 답했다. 비슷한 질문이 몇 차례 반복되자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김씨의 어머니 김소희(49 서울 영광교회) 집사는 “나도 왜 아들이 다리를 그리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씨는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단 ‘브릿지온 아르떼(Bridge on Arte)’ 소속 작가다. 예술단 이름엔 예술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다리(bridge)가 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브릿지온 아르떼에는 현재 김씨를 포함해 장애인 4명이 소속돼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한 갤러리에서 합동 전시회를 열었는데, 당시 이들이 출품한 작품은 현재 밀알복지재단 유튜브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씨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왜 미술에 빠지게 된 것일까. 김씨 부모가 아들의 장애를 처음 인지한 것은 세 살이 됐을 때였다. 아들은 남들과 시선을 맞추는 일에 서툴렀고 또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김씨 부모는 병원을 찾아갔고 이듬해 김씨는 자폐성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또래보다 어눌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서툰 아들이었지만 미술 실력만큼은 남달랐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서너 살쯤 됐을 때 다닌 놀이치료실에서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그림 수업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놀라워하더군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뭔가를 입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이죠. 재능도 있었지만 관심도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색연필을 쥐여주면 종일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김씨가 브릿지온 아르떼 소속 작가가 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이전까지 그는 강북의 한 복지관 직업준비반에서 제품 포장하기 등 단순 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예술단에 속하게 되면서 김씨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월급을 받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거듭났다. 김씨가 첫 월급을 받은 날 그의 집에선 피자와 치킨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첫 월급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며 “아들이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겨진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모든 일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언젠가는 부모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할 텐데, 그때에도 하나님이 계획한 길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