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학교가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사건입니다. 프랑스 사례를 보더라도 1987년 문을 연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는 공연계를 비롯해 예술계 전체에 큰 임팩트를 줬습니다.”
루씰 보송(72) 국제인형극연맹(UNIMA) 재무위원 겸 집행위원이 오는 8월 개교하는 춘천국제인형극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위촉돼 내한했다. 지난 7일 춘천에서 열린 위촉식에 앞서 5일 서울에서 만난 보송 위원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학교는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에서 국립인형극학교 졸업생들은 인형극만이 아니라 연극, 무용, 마임, 오페라, 서커스, 조형예술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작품으로 프랑스 예술계에서 각광받고 있다”며 “춘천국제인형극학교는 이제 시작이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프랑스처럼 한국 예술계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은 1989년 한국의 첫 인형극 축제인 춘천인형극제가 탄생한 것을 계기로 인형극의 중심지가 됐다. 1세대 공연 기획자 강준혁이 그해 국내 인형극인들과 함께 시작한 춘천인형극제가 호평을 받자 춘천시가 지원하기 시작했고, 춘천시의 지원은 인형극계가 춘천을 중심으로 모이게 했다. 춘천에는 2000년 500석 규모 객석과 인형박물관을 갖춘 국내 첫 인형극 전용극장인 춘천인형극장이 개관한 데 이어 2020년 국내 첫 국공립 인형극단인 춘천시립인형극단이 출범했다. 오는 8월 국내 첫 인형극학교인 춘천국제인형극학교도 문을 연다.
“동유럽은 인형극의 전통이 강해 1952년 체코에 인형극학교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프랑스는 기뇰(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가락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극)이 있지만 대체로 동유럽보다 인형극 전통이 약합니다. 1961년 아마추어 인형 조종사 자크 펠릭스 주도로 프랑스 북부 도시 샤를르빌-메지에르에서 인형극 축제가 열린 뒤 인형극인들이 모이게 됐습니다. 2년마다 열리는 축제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인형극 교육기관의 필요성이 대두해 샤를르빌-메지에르에 국립인형극학교까지 들어서게 됐죠.”
정식 명칭이 ‘인형극 예술을 위한 국립고등예술학교’(ESNAM)지만 약자인 ‘에스남’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는 3년제이며, 3년마다 26세 이하 학생 15명을 선발한다. 학비는 무료. 대체로 다른 예술 장르를 거친 학생들이 6대 1의 평균 경쟁률을 뚫고 입학해 인형제작과 조종술 외에 연출, 연기, 발성, 조명, 무대미술 등 인형극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도록 훈련받는다.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는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도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등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는 게 특징이다.
“유럽 대학의 연극과에 인형극 전공이 포함돼 있지만 인형극으로 특화된 학교와는 방향성이 다릅니다. 대학 연극과에 있는 인형극 전공은 아카데믹한 연구나 평론의 관점에서 인형극을 배운다면 인형극학교는 창작자를 배출합니다.”
2003~2014년 국립인형극학교 교장을 역임한 뒤 현재 프랑스 유일의 인형극 전문극장이자 연구센터인 무프타르(Mouffetard)의 수장인 보송은 “프랑스에선 인형극 전통이 강하지 않은 대신 다른 공연예술 장르와 융합이 활발했다. 특히 에스남 출신들이 공연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 덕분에 흥미로운 작업이 많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인형극이 아동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고 하자 그는 “인형극학교가 생기면 인형극이 아동뿐 아니라 대중 속으로 좀 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형극이 다른 장르와 융합되면 표현의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확장된다”고 답했다.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를 모델로 삼고 있는 춘천국제인형극학교는 국내외 인형극 및 공연 예술 분야 전문가들로 교수진을 구성했다. 올가을과 내년 봄 두 차례 코스를 운영한 뒤 내년 9월부터 2년제 과정의 정규학교로 운영된다. 올가을 코스는 8월 29일부터 18주이며 24명을 모집한다.
한편 춘천에서는 올해 20개 도시가 가입한 세계인형극우호도시연합(AVIAMA) 총회가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춘천인형극제와 함께 열린다. 4년마다 열리는 유니마(UNIMA) 총회를 2025년에 유치하는 등 춘천은 ‘인형극의 도시’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