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린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영화의 다른 챕터’. 평생 49편의 영화를 찍었으니 알트만 감독의 말대로라면 그는 총 49개 챕터로 구성된 한 편의 영화를 찍은 셈이다. 그리고 알트만 감독의 말을 인용해 설명하고 싶은 두 편의 영화가 있다. ‘같은 챕터의 다른 영화’.
소재만 같을 뿐 감독이며 형식이나 내용은 같은 게 전혀 없어 붙인 표현이다. 한 편은 79분짜리 다큐멘터리이고 다른 한 편은 129분 길이의 픽션이다. 출연자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배우도 아닌 백발의 낯선 목사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다큐멘터리와 달리 또 다른 영화의 주인공은 국민배우 국민여동생으로 불리는 배우들이 맡았다. 감독 역시 한 명은 촬영 당시 영화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미국인 감독이고 다른 한 명은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국적의 세계적 거장이다.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데 같은 챕터로 묶은 이유는 두 편의 영화가 같은 소재에서 출발해서다. 소재는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가 교회 담벼락에 만든 베이비박스이고, 두 영화의 제목은 드롭박스와 브로커다. 브로커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을 받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뒤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영화에 출연한 송강호는 한국 남자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받았고 가수 아이유는 전 세계에 배우 이지은이란 이름을 각인시켰다. 다소 낯선 드롭박스도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제13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주목받더니 제9회 샌안토니오기독교독립영화제 대상, 제5회 저스티스영화제에서 가장 정의로운 영화상을 수상했다. 2015년 미국 800여개 상영관에 걸리기도 했다.
소재는 같아도 이야기 전개는 다르다. 드롭박스는 영화의 주인공인 이종락 목사와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딛고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드롭박스, 즉 작은 상자 안에 담기는 생명의 무게를 전달한다. 브라이언 아이비 감독은 영화를 찍은 뒤 하나님을 영접했다. 브로커는 바로 그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엄마 소영과 버려진 아기를 아무도 모르게 거래하는 브로커들의 이야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브로커를 촬영하기 전인 2020년 1월 주사랑교회를 찾아 이 목사를 만났다.
두 영화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베이비박스라는 소재를 향한 시선은 같았다. 이를 영화제가 알아봤다. 브로커는 칸 영화제에서 에큐메니컬상, 드롭박스는 샌안토니오영화제에서 생명존중상을 받았다. 칸은 에큐메니컬상 수상 기준을 ‘상처와 좌절 근심을 희망과 함께 그려내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성찰하며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영화’라고 했다. 드롭박스가 받은 샌안토니오영화제의 생명존중상도 다르지 않다. 두 영화가 다른 영화제에서 유사한 상을 받은 건 베이비박스라는 소재를 동일한 시선으로 봤기 때문일 듯하다.
교계 원로인 김상복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는 그 시선을 ‘보편적 언어’라 표현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에 “언론 여론 등 세상과 단절돼 있었던 데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목회자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 보편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보편적 언어란 단순한 말을 넘어 세상과 공감하며 세상이 기대하는 선한 영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베이비박스는 보편적 언어로 세상에 생명 존중을 알렸고 두 영화는 바로 그 언어를 통해 베이비박스에 동일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이유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등을 받은 이란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영화 브로커와 드롭박스는 한국교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