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그림책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받은 백희나가 대표적이다. 두 작가는 국제도서전에 가면 스타 대접을 받는다. 그에 비해 한국 아동문학은 외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동화책은 글이 중심이기 때문에 번역 문제가 따라붙는다.
아동문학의 번역 문제는 올해 안데르센상에서 다소 희극적으로 노출됐다. K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는 안데르센상 한국 후보자로 이수지(그림작가 부문)와 이현(글작가 부문)을 추천했다. 후보를 추천할 때는 대표작을 다섯 편까지 심사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는데, 이현의 경우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 없어서 네 편은 샘플만 번역해서 보내야 했다. ‘푸른 사자 와니니’ 한 편만 겨우 전체 번역으로 제출했다. 심사위원들이 이현의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비룡소 출판사에서 만난 이현(52)은 “번역을 다 해서 작품을 냈다고 해도 수상을 장담할 순 없겠지만 영어 번역이 안 되면 기회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아동문학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돼 30년 남짓 됐지만 짧은 기간에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뤘다. 지금은 세계 아동문학에 비춰서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세계에 알려질 기회가 적었다”고 얘기했다.
이현은 안데르센상 수상자가 되진 못했지만 안데르센상 측은 그의 작품 ‘푸른 사자 와니니’를 아너리스트(전 세계 어린이가 함께 보면 좋을 책)에 올렸고, ‘1945, 철원’을 ‘심사위원 추천 도서 20’에 선정했다. ‘푸른 사자 와니니’는 국내에서 60만부 이상 팔린 어린이문학 분야 초히트작이다. ‘1945, 철원’은 해방기 철원을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소설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출간된 적은 아직 없다. 인터뷰에 동석한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그림책과 달리 아동문학이 영어로 출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 아동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서는 번역·출판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은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3년만 써보자, 그래서 안 되면 독자로 살지 뭐, 그런 심장으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2004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성인용 문학으로 시작해 동화작가가 된 경우다.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동화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소설을 썼다. 데뷔 이후에도 단편 몇 개를 습작했는데 꼭 쓰고 싶은 간절한 이야기가 별로 없더라. 예측가능한 이야기들을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짜장면 불어요’라는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은 확신도 들었다. 무엇보다 너무너무 즐겁게 썼다. 그 작품이 2006년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다음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동화를 계속 쓰는 그를 보고 소설은 언제 쓸 거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현은 “동화를 아래로 보는 시선들이 있다. 동화는 쓰기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어린이나 어린이 관련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그렇다”면서 “동화는 ‘쉬운 장르’가 아니라 ‘특별한 장르’”라고 말했다.
“예술은 아티스트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인데, 아동·청소년문학은 다른 장르랑 이름부터 다르다. 수용자가 장르 이름에 들어가 있다. 아동·청소년문학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작가가 특정 계층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 마음에 가닿지 않으면,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의미가 없다.”
아이들의 마음에 가닿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까. 그리고 성인 작가가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 그는 “아이들의 마음을 지금의 나가 아니라 그때의 나로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그 마음을 가시화하는 게 어린이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초등학교 시절이 어땠나.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니까 별로 심각한 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나. 그때의 감정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치열했나. 받아쓰기 시험이 겁나서, 학교에 가기 싫어서 얼마나 힘들었었나. 사람은 누구나 매 시기 굉장히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고, 힘든 일을 겪고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청소년과 소통한다는 건 성장의 시기에 통과해야 하는 지점 지점들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커상 수상 작가 이언 매큐언이 쓴 환상동화 ‘피터의 기묘한 몽상’을 예로 들었다.
“소년의 성장담을 환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간 작품인데 소설이라 할 수도 있고 동화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가 이 동화를 왜 썼을까. 소년들과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지만 어린이와 쪼그려 앉아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동화를 쓸 수 있다.”
그는 또 “유년은 굉장히 외로운 시기”라면서 “그래서 문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인은 누구나 다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고 누구나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자기 얘기를 쉽게 한다. 그런데 어린이는 그걸 잘 모른다. 그래서 자기 얘기나 마음을 안으로 감춰두고 있다. 엄마가 언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선생님이 날 안 예뻐하는 것 같아, 난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껴, 이런 얘기를 어린이들은 잘 못 한다. 생각해봐라. 어렸을 때 개인사나 어려움을 남한테 얘기하기 시작한 게 언제였을지. 굉장히 늦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년은 굉장히 외로운 시기다. 어린이들에게 문학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위로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문학은 어른보다 어린이들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
그는 동화를 쉽게 생각하는 작가들에게는 “어린이 독자에 대한 존중감이 없다면 부디 딴 일을 알아보면 좋겠다”고 말리고, 글 잘 쓰는 후배 작가들에게는 “초등학생들은 책을 많이 읽고, 아주 기쁘게 읽고, 흠뻑 빠져서 읽는 독자들”이라며 동화 쓰기를 권한다. 그는 책에 사인해줄 때도 어린이 이름 옆에 ‘독자님’이라고 적는다. ‘○○○ 독자님’ 이렇게.
“어린이는 독자로선 비기너다.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하는 단계. 비기너이기 때문에 진입을 잘하게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청소년 독자로 자라고 어른 독자로 자란다. 평생 같이 책을 읽고 쓰고 담론과 시대를 공감하는 독서 공동체가 된다.”
어린이책 작가들은 어린이를 독자로 발견하고 경탄한다. 그림책 작가 이수지는 올해 세계어린이책의날을 맞아 제작한 포스터에서 책 읽는 어린이들의 자유분방한 모습들을 그려 넣은 후 ‘굉장한 독자들’(Amazing Readers)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날 이현은 막 출간된 ‘오늘도 용맹이’ 1권을 들고 나왔다. 새로 시작하는 유년동화 시리즈로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지난 1월 청소년소설 ‘호수의 일’을 발표했고 다음 달에는 ‘푸른 사자 와니니’ 4·5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독자층이 달라지는 건 사실 꽤 어려운 도전”이라며 “동화를 쓰다 청소년 소설을 쓰려면 한층 깊은 바다로 잠수해 들어가는 것 같고, 청소년 소설을 쓰다 동화를 쓰려면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달리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년동화를 쓰는 게 가장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