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송업계의 오랜 고민 중 하나는 환경 문제일 것이다. 연료를 대량 소모하는 선박업체는 특히 그렇다. 국내 조선소에서 주력으로 건조하는 8000~1만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운항하려면 10만 마력 이상의 엔진이 필요한데, 이 정도 출력을 종일 내려면 연료만 300~400t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배출하는 환경오염 물질도 큰 골칫거리다. 선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항공기 철도 등 운송업체를 운영하려면 이런 환경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각종 규제가 나날이 강화되는 시점에 이는 대단히 큰 걸림돌이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친환경 연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연구가 언제 우리 현실에 들어올지 알기 어렵다. 새로운 연료를 이용하려면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 운송수단도 새로운 것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 짧게는 십여년, 길게는 수십년씩 운영되는 운송수단을 일거에 교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 연료만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친환경 연료의 다크호스 ‘암모니아’
현재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암모니아다. 암모니아의 화학식은 NH3로 질소와 수소의 화합물인데, 연소하면 질소산화물이 일부 발생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전혀 나오지 않아 친환경 연료로 가장 적합한 후보 중 하나다.암모니아는 기존의 선박 엔진을 조금만 개조하면 즉시 연료로 쓸 수 있다. 스파크 점화식의 2행정 방식 엔진에도 사용할 수 있어서 그렇다. 실제 가솔린 엔진을 개조해 암모니아를 연료로 사용한 사례도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가솔린 엔진을 개조한 암모니아 엔진을 개발한 적이 있는데, 이 엔진을 넣은 자동차로 시속 60~80㎞ 시험 주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다른 연료에 비해 높은 경제성도 큰 장점이다. 암모니아 생산 비용이 휘발유와 경유 생산 비용보다 다소 비싼 편인데, 해외보다 유가가 비싼 국내에선 휘발유와 경유의 판매가격보다 암모니아 가격이 더 싼 편이다. 취급과 공급도 쉽다. 기존의 LPG 인프라를 조금만 개조하면 차량이나 선박용 암모니아 충전소로 사용할 수 있다.
암모니아는 친환경 연료의 대표 격인 ‘수소’로 전환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수소에 비해 단위 부피당 1.5~2배의 저장 용량을 가지고 있어서 대용량 저장과 장거리 운송이 어려운 수소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도 기존 화학공장 등에서 사용하던 암모니아 저장 및 운송 인프라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암모니아를 얼마나 깨끗하게 생산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친환경 암모니아를 만들려면 깨끗한 수소부터 만들어야 한다. 친환경 수소는 그린수소와 블루수소 등이 있는데, 천연가스와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를 함께 이용하는 하이브리드형 수소를 블루수소라고 하며, 신재생 에너지만 이용해 만드는 수소를 그린수소라고 한다. 블루수소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대단히 낮고, 그린수소는 전혀 없다. 즉 그린수소를 재처리해 만든 암모니아만을 그린 암모니아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면 암모니아 생산단가가 크게 올라갈 텐데, 업계는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출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친환경 인공석유 ‘이퓨얼’도 각광
다음으로 주목할 에너지가 이퓨얼(E-Fuel)이다. 이퓨얼은 전기기반연료(Electricity-based Fuel)의 약자다. 대기 중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수소로 제조한 합성연료. 쉽게 말해 친환경 인공석유를 뜻한다. 기존의 석유와 사실상 같은 물질이라 당장 내연기관 차량이나 선박, 항공기 등에 그대로 넣어 사용할 수 있고, 기존의 석유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물론 이 연료를 사용하면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다만 만드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쓰게 되므로, 넓은 시각에선 지구 전체의 탄소가스 농도가 증가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더구나 완전히 성분이 조정된 연료를 만들 수 있어서 연소 효율이 대단히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기존보다 미세먼지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거라는 기대도 있다.
이퓨얼을 만들려면 먼저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야 한다. 대기 중에서 포집하면 DAC(Direct Air Capture), 공장 발전소 등 산업현장 배출가스에서 포집하면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라고 부른다. 캐나다 카본 엔지니어링에 따르면 DAC 장치 한 대가 연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은 10만t 정도. 이것으로 약 2460ℓ 이퓨얼을 생산할 수 있다. 수소는 당연히 그린수소를 이용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자동차 업계가 이퓨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포르쉐는 지난해 2400만 달러를 투자해 에너지기업 지멘스와 함께 칠레에 이퓨얼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2026년부터 연 5억ℓ 규모의 이퓨얼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밖에 도요타 닛산 혼다는 지난해 7월 탄소중립 엔진 개발을 위해 이퓨얼 공동 연구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4일 덴마크 할도톱소사와 친환경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해 이퓨얼 공동 개발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도 2019년 기초선행연구소(IFAT) 설립 후 이퓨얼 제조기술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기술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화학연구원에 따르면 이퓨얼 생산 단가는 배럴당 200달러 수준으로, 기름값이 오를 대로 오른 지금보다도 2배 가까이 비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기술이 발전하고 규모의 경제가 완성되며 가격이 한층 더 낮아질 거라는 기대가 많다. 포르쉐는 이퓨얼 가격이 10년 안에 5분의 1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퓨얼과 비슷한 개념의 연료로 바이오가스나 바이오디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그 식물에서 연료를 추출해 사용하면 결국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모든 탄소순환 과정을 인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이퓨얼 쪽이 효율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주장이 많다.
진정한 친환경 연료를 만들어 보급하려면 수소, 핵융합 등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가 보급돼야 한다. 그런 기술의 실용화를 막연히 기다리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암모니아, 이퓨얼 등 친환경 연료는 더 깨끗한 세상에 다가서는 현실적 대안이 돼 줄 것이다.
전승민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