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석면 노출로 생긴 암이 20~30대 제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습니다. 대학 공부도 포기한 채 항암에 매달리고 있지만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학교를 석면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지역 환경·시민단체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회견에 나온 안모씨가 던진 경고다. 그는 2015년 19세에 ‘석면암’으로 불리는 악성 중피종이 발병해 왼쪽 폐를 제거하고 투병 중이다. 안씨의 발암 원인으로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석면에 노출된 것이 유력하게 의심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안겼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로, 장기간 노출되면 악성 중피종을 비롯해 폐암 후두암 난소암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흉막(폐·흉강을 둘러싼 얇은 막)에 생기는 악성 중피종의 70% 정도가 석면 노출이 원인이다.
한국은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 한참 늦은 2009년에서야 석면과 석면 함유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2011년부터 환경부 주도로 석면 소재 슬레이트 지붕 철거에 나섰고 교육부는 2027년까지 학교 석면의 전면 제거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학교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석면 노출로 인한 건강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악성 중피종은 2019년 기준 국내에서 158명의 환자가 발생해 전체 암 발생의 0.06%를 차지하는 매우 드문 암이다. 최근 5년간 매년 140~163명이 새로 진단받았다.
국립암센터 이종목 흉부외과 전문의는 1일 “1970년대부터 석면 규제를 시작한 미국은 매년 3300여명의 악성 중피종 환자가 발생하고 발생률은 2000년도에 최고치를 나타내다가 이후 감소 추세”라면서 “미국보다 규제가 늦은 우리나라는 2009년 전까지 석면이 건축자재 등에 지속적으로 쓰여 왔기 때문에 노출에 따른 악성 중피종 발생이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악성 중피종은 대개 석면 노출 기간이 10년 정도 되고 노출 후 20~40년에 걸쳐 발생한다. 일각에선 2045년경에 국내 발생 환자의 정점을 찍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순천향대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민영 교수는 “석면 먼지는 폐를 통해 들어오면 빠져 나가거나 녹지 않기 때문에 몸 안에 평생 남아있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과 염색체에 손상을 일으켜 암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면 노출 외에는 방사선 치료나 탄소나노튜브(나노 크기의 첨단 소재), 바이러스성 암 유전자, 방사성 광물인 이산화토륨·에리오나이트 등이 악성 중피종의 위험 인자로 지목된다.
악성 중피종은 50대 이후에 주로 발생하는데, 이보다 이른 나이에 발병하는 환자의 경우 소아기부터 석면에 노출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가장 흔한 증상은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호흡곤란과 흉통이다. 악성 중피종이 진행할수록 체중 감소, 마른 기침과 함께 호흡곤란이 악화된다. 흉통의 경우 가슴에서 윗배나 어깨 팔 부위로 통증이 퍼지기도 한다.
다른 장기에서 흉막으로 전이된 암과 원발 악성 중피종의 감별도 중요하다. 폐나 위, 자궁경부 등에서 옮겨온 암과 원발암 모두 흉막 안에 흉수(물)가 차는데, 이 흉수를 뽑아 검사하면 암 여부는 알 수 있지만 전이암인지 원발암인지는 파악이 어렵다. PET(양성자방출단층촬영) 등 추가 검사를 통해 다른 장기에 암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흉막 자체에서 발생한 암으로 판단한다.
악성 중피종은 대부분 진행된 상태로 진단되고 조기 발견된다 하더라도 수술 만으로 완치가 힘들다. 5년 생존율은 9~10%선에 불과하다. 최근 일부 면역 항암제의 병용 요법이 악성 중피종에 효과를 보이고 있는 점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이종목 전문의는 “악성 중피종은 발병 후 치료가 매우 힘들고 진행이 빠르며 치명률이 높은 질환”이라며 “치료 보다 석면 노출을 줄이려는 예방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민영 교수는 “석면 분진이 발생하는 환경에 노출된 곳이라면 배기 장치를 설치하고 방진 혹은 송기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흡연은 상승 작용을 일으켜 악성 중피종 위험을 더욱 높이기 때문에 석면에 노출된 적 있는 사람은 반드시 담배를 끊어라”고 권고했다. 이 전문의는 “석면 사용 제한과 작업 환경의 개선은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며 거기에 더해 금연 등 개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