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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것의 쓸모… 쓰는 사람이 만들지요”

김우희 목수가 지난 3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의 작업실 목우공방 옆 논두렁에 앉아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한옥 대목장을 15년 하던 그는 2016년부터 제2의 고향인 진동면에 내려와 소목장으로 산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양혜규 개인전’이 열릴 때 ‘전시 속 전시’처럼 소개된 목우공방 숟가락들.


목우공방에서 옻칠한 나무 그릇을 다시 사포질하는 김우희 목수.


“이렇게 구멍 숭숭 난 나무 그릇을 어디에 쓰나요”라고 묻자 “그거야 쓰는 사람 마음”이라며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답이 돌아왔다. 푹푹 찌는 8월의 더위,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한 대 돌아갈 뿐인 공방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이따금 선문답하는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 정면을 잘 응시하지 못할 정도로 부끄럼을 탔고 통속적 잣대와 다른 기준으로 사는 사람 같아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김우희(53) 소목장(건물의 창호, 목기, 장롱 등의 목가구를 제작하는 목수)의 작업실 목우공방을 지난 3일 찾았다. 철골에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소박한 작업실 옆 논에는 뙤약볕에 쑥쑥 자란 모가 푸르렀다. 40평 공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시간을 빼면 종일 틀어박혀 나무를 만지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숟가락, 그릇, 접시, 쟁반 같은 목기가 빼곡했다.

찬찬히 보니 모양이 ‘정상적인’ 게 없었다. 숟가락은 손잡이 부분이 굽었고 그릇 중에는 한쪽이 기울거나 일부가 툭 떨어져 나간 것도 있었다. 쟁반과 접시도 반듯한 모양이 없었다.

김 목수의 작업을 보고 ‘장애’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는 설치미술가 양혜규(51) 작가가 이해가 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매년 현대차의 후원을 받아 중견 작가의 전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MMCA 현대차 시리즈’를 한다. 양 작가는 여기에 뽑혀 2020년 서울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 ‘전시 속 전시’처럼 목우공방 김 목수의 나무 숟가락이 전시됐다. 숟가락은 특이해 숟가락 구실을 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아주 얇은 종이 숟가락, ㄱ자 모양으로 꺾인 숟가락, 국자처럼 큰 숟가락, 향나무 뿌리로 만든 뿌리 숟가락, 앉기를 거부하고 서 있는 숟가락….

양 작가는 김 목수를 ‘어머니의 지인’이라 소개하며 “공방 한구석에 놓인 구멍 난 숟가락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일종의 ‘장애’를 가진 숟가락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둔 것이 신기했다”며 전시 참여를 요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목수의 손끝에선 장애를 가진 듯한 목기들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전지한 뒤 버려진 나뭇가지, 산에서 주운 나무뿌리, 땔감으로 모아둔 나무토막, 쓰다가 버린 가구 등에서 나온 게 재료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중고 포털인 당근마켓을 기웃거린다. 얼마 전엔 오크 원목 테이블을 5만원 주고 샀다. 거기서 나온 의자 등받이로 만들었다며 나뭇결이 고운 접시를 내밀어 보였다.

“버려지는 게 너무 많아요. 아까운 게 천지 널려 있습니다. 보이는 족족 줍거나 얻어옵니다.”

새것만 좇는 과시적이고 과잉 소비하는 문화가 판치는 세상이라 김 목수의 작업은 귀해 보인다. 완성된 물건마다 어느 집 한옥에서 나온 마룻장 토막을 주워온 것, 동네 어르신이 전지하고 버린 나뭇가지를 막걸릿값 주고 구해온 것 등등 하나하나 사연이 있다. “완성된 그릇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제게는 모두 자식 같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입꼬리에 엷은 미소가 퍼졌다.

그의 작업이 갖는 또 다른 가치는 나무가 생긴 대로 모양을 끌어내는 작업 태도에 있다. “생긴 대로 살려보는 것이지요. 최대한 원형을 훼손하지 않은 채 깎아내고 문지르고….”

안이 썩었지만 깎다 보니 차마 버리지 못해 끝까지 다듬고 문지르고 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구멍 난 그릇도 있다. 명주실로 꿰맨 그릇도 보였다. 주인의 ‘측은지심’ 덕분에 새 생명을 얻은 목기인 셈이다. 그는 “물론 그릇으로는 정상적인 기능을 못 한다. 그런데 꽃꽂이하는 분들은 이런 걸 오히려 좋아하더라”고 귀띔했다. 그가 만든 그릇은 이상해 보이지만, 이렇듯 쓰는 사람이 쓸모를 만들어내곤 한다. 이걸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 불렀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라고나 할까.

나무의 생김새를 오롯이 살려낸 그의 그릇들은 그렇게 연민의 정서와 후덕함, 포용성을 품고 있다. 점점 계산적으로 돼가는 세상, ‘우리 편만이 옳다’며 상대방을 몰아가는 세상에서 목우공방 김 목수가 깎은 그릇들은 ‘다름도 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김 목수의 인생은 굴곡지다.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0대 말까지 고향 인근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일하던 화전 밭은 마을에서 10여리 산길을 걸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지만 그는 대학생이 됐다. 1988년 봄 경남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배달까지 하던 그는 91년 가을 학교를 그만뒀다. ‘마산창원노동자문학회 참글’에서 ‘김소’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글쓰기와 시를 공부했다. 문학청년 시절을 뒤로 하고 용접 일을 배워 97년(22세) 봄 창원의 타워크레인 제작 공장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공장 생활은 재미있었지만 98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회사가 문을 닫으며 끝이 났다. 해고무효투쟁을 하며 노조선전물을 만드는 역할을 하던 그는 2001년 초부터 그해 9월 말까지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경남2지부에서 선전 업무를 맡아 신문을 제작했다.

노동조합 일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하던 그는 문득 목수가 되고 싶어졌다. 어릴 적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를 만지고 나무로 팽이를 깎아 놀던 그에게 나무는 고향처럼 푸근한 재료였다. 직업훈련소에서 전통목구조 일을 배웠고 2001년 겨울부터 2015년 봄까지 15년간 전국을 돌며 한옥 목수로 일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파리 한옥을 수리하러 간 적도 있다.

다시 변화의 시기가 왔다. “짬밥이 차서 ‘오야지’(작업장 두목)가 돼 후배들을 끌고 독립해야 하는 시점이 됐지만 그건 성격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2016년 2월 창원 시절에 자취를 해서 제2의 고향 같은 진동면으로 내려왔다. 사람들이 부탁하는 선반을 짜고 책상을 만들어 주다 목우공방을 차렸다. 집 짓는 대목장 대신 소목장으로 살고 있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작업은 꽤 오래 걸린다. 종일 작업해도 하루 2∼3개를 겨우 만든다. 깎고 사포로 문지르고 칠하는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오일스텐이나 동백기름보다 방수효과가 더 좋은 옻칠을 주로 한다. 옻칠로 검붉게 반짝이는 그릇에 얹힌 음식은 소담하고 먹음직스럽다.

그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질적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것도 같은 게 없는 숟가락과 그릇, 접시 등은 실용성을 넘어 예술적 생명력을 품고 있다. 연민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매번 다른 걸 만들어내고자 하는 창작의 열정이 꿈틀거린 결과로도 보인다. 재료가 가진 본성을 그대로 끌어내려는 그에겐 장인을 넘어 예술가의 기질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작품을 하듯 만든 추상적 형태의 스탠드가 두어 개 부끄러운 듯 숨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소망은 꼭 실현될 것 같다.

창원=글·사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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