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아산병원 뇌출혈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크게 이슈화됐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어떻게 세계 50위권의 초대형 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게 하나다. 새벽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의 긴급 수술을 담당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서 골든타임을 놓쳐 끝내 숨진 게 충격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직원의 생명 하나 구하지 못하는 응급 시스템이라면 같은 상황에 처한 일반 국민에 대한 의료 대응인들 제대로 하겠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진상조사로 병원 측의 과실이나 위법이 확인되면 그에 맞는 행정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관건은 이번 사건의 기저에 깔린 근본 원인에 대한 개선과 해결 의지다. 어떤 사안이든 본질을 도외시한 채 미봉책에 그친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뇌출혈 간호사와 비슷한 사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비일비재하다. 이번엔 국내 최고 대학병원에서 그것도 직원인 간호사가 피해를 봤다는 게 관심거리로 이슈화됐을 뿐이다. 그간 의료계와 학계가 끊임없이 비슷한 피해의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고 개선책을 요구해 왔으나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예고된 인재인 셈이다.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국민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만큼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뇌혈관질환은 암, 심혈관질환과 함께 한국인의 주된 사망 원인이다. 인명 손실이 큰 질환인 만큼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전망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혈관질환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19 체계와 잘 연동돼야 하고 24시간 365일 작동하는 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응급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뇌혈관집중치료실과 신경계 중환자실이 항시 일정 부분 비어있어야 하며 신경과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등 뇌혈관 치료팀이 즉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국내 대다수 의료기관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뇌혈관집중치료실을 갖추고 있는 병원은 평가 대상 233곳 중 42.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뇌졸중학회 조사에 의하면 전국 163개 응급의료센터의 30% 이상은 24시간 뇌혈관 진료가 가능하지 않다.
이러다 보니 뇌혈관 응급 환자의 전원이 빈번하다. 뇌경색 환자의 15~40%가 첫 방문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골든타임이 지난 후 다른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시작한다. 전원 환자의 사망률은 최초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보다 3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번 서울아산병원 사건에선 전원 조치라도 취해졌지만 일반 환자 중에선 그마저도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응급 수술이나 시술 등 뇌혈관 치료 인력 부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직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실명으로 실태를 밝힌 것처럼 고되고 위험도가 높지만 보상(의료 수가)이 낮은 뇌혈관 수술 분야를 외면하는 의료계 풍토가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 신경외과 의사 수는 인구 10만명당 4.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3명)보다 높지만 뇌혈관 수술을 하는 전문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피 대상이 된 뇌혈관 등 중대 사망 질환이나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적정한 수가와 진료 여건 개선 등을 통해 예비 전문의인 전공의들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인 요소를 만들어줘야 지속 가능한 정책으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