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동네 아줌마 얘기다. 부스스 일어난 딸이 엄마에게 시간을 물어봤다. 오전 11시라고 하자 “너무 일찍 일어났잖아” 그러면서 다시 자기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자더란다. “얼른 개학해서 이 꼴 제발 그만 봤으면 좋겠다!” 최근 10대 자녀를 둔 지인들을 만나면 이런 얘길 꼭 한다. “애가 오후 서너시까지 잔다.” “걔는 새벽까지 자기 방에서 대체 뭘 하는지….”
그런데 아이들이 실컷 놀고 잤다고 할 집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5월 발표한 전국 초등학생 4~6학년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10명 중 9명은 부모의 권유(45.6%)에 따라 사교육을 하고 있었다. 귀가 시간은 절반 이상인 57.3%가 오후 6시 이후였다. 오후 8시 이후 집에 돌아간다는 답변도 16.4%였다. 집에 돌아와도 놀지 못했다. 어린이의 53%는 하루 1시간 이상, 20.6%는 2시간 이상 학원 숙제를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 시간은 더 늘어난다. 놀 시간이 별로 없다. 억지로 여러 학원을 뱅뱅 돈 아이들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한 청소년 전문가에게 들은 얘기다. 상담받으러 온 아이 다수가 ‘오징어 팔’을 가졌다고 했다. 오징어 팔은 무기력해진 청소년에 대한 은유다. 부모 손에 이끌려 여러 학원 등에 끌려다니다 보니 매사에 의욕이 없고 수동적이란 얘기다.
사춘기 아이들은 방문을 닫는다.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기 정체성 확립, 부모로부터 정서적 독립이 청소년기 주요 발달과업이다. 방문을 닫는 것은 부모로부터 방해받지 않겠다는 정신적 선언이고,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자기 탐구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마마보이나 파파걸이 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녀 내면의 가장 큰 짐은 부모 내면의 ‘살지 못한 삶’”이라고 했다. 자녀에게 공부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다른 뭔가를 성취하길 간절히 바란다면 그 욕구가 혹시 자기가 살지 못한 삶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10대일 때를 돌아보면 지금 자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새 나갈까 봐 이어폰을 꽂고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따라 부르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맞고선 공부하고 있었다며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발밑에 무협지를 쌓아 놓고 신나게 넘기다가 아버지한테 뒤통수 맞은 또래 남자도 많이 안다.
같은 복수 응답 설문에서 어린이들은 여가 시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68.2%)을 꼽았다. 왜 이런지 우린 잘 안다.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다. 실제 그 안에 재밌는 것도 많다. 많이 놀라고만 해도 행복해진단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전국 초·중·고생 설문조사에 따르면 놀이와 여가에 대한 주변 지지가 높을 경우 아동·청소년의 행복감은 34.5%였다. 반면 주변의 지지가 낮을 경우 17.3%로 행복감이 낮았다.
많이 노는 아이는 행복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자기 방에서 안 나오는 것은 가족 방해 안 받고 혼자서 많이 놀고 싶어서다. 그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아이는 훌쩍 자라서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온다. 대략 2년이라고 한다. 친한 동네 아줌마는 10대였던 아들을 한때 많이 혼냈다. 지금 그 아들은 요리사로 성실히 잘 산다. 그녀는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 방문을 억지로 열지 말고 혼자 즐기고 탐험할 시간을 주자. 자녀는 자라고 있다. 부모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이다.
강주화 종교부 차장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