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빛과 소금] 반지하, 수원 세 모녀 그리고 교회



‘반지하(Banjiha)’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통해서다. 가난한 주인공 가족이 사는 공간으로 빈부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필자도 대학 시절 반지하 하숙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사는 데 불편하다고 느꼈을 뿐 반지하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올여름 115년 만에 서울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는 ‘죽음의 감옥’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뇌리에 각인됐다. 지난 9일 새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40대 발달장애 여성과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1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당시 반지하 바로 옆 지하주차장으로 유입된 물이 집 바깥에 차올라 출입문이 열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동생은 병원에 있는 70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고, 모친은 이웃 주민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서울시는 수해 예방 차원에서 반지하 주택을 장기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인들 그곳에 살고 싶겠는가. 불편하고 위험한데도 그곳에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반지하 보증금은 수백만원 수준이지만 지상층은 수천만원 이상 든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교한 이주 대책 없이 반지하 주택만 없앨 경우 서민들은 쪽방, 고시원 등 더 열악한 곳으로 내몰릴 것이다.

지난 22일 또 하나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기도 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의 시신이 발견됐다. 암과 난치병 등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된 생활을 해온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생활고가 극심했는데도 외부와 단절된 채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서비스를 전혀 신청하지 않아 관할 지자체에서도 이들의 어려움을 모르고 있었다. 주민등록지는 화성시로 실제 거주지와 달라 복지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세 모녀는 2년 전 보증금 300만원, 월세 40여만원의 12평 주택에 입주했는데 병원비 때문에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정말 죄송하다’는 메모와 함께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를 놔두고 극단적 선택을 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8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은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면 국가의 복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체계에 허점이 없는지 점검하고 신청주의 복지서비스를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로 개편해야 한다.

반지하 참사와 수원 세 모녀 사건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의 얘기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최소한의 복지를 누리며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나눔과 돌봄 사역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그것이 세상 속 공교회의 참모습이 아닐까. 각 지역 교회들이 심방 다닐 때 고립되어 있거나 독촉장 등 우편물이 쌓여있는 집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위기에 처한 이웃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교회가 직접 돕지 못하더라도 동주민센터에 신고만 하면 긴급복지 등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 보듯 복지제도를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위기 가구가 많다. 서울시도 ‘약자와의 동행’을 위해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견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교회가 함께 협력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예수님은 가난한 형제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으로의 초대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