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공조를 과시해온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이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꽉 잡았던 손을 슬쩍 놓고 있는 쪽은 중국이다. 지난 15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에서 틈이 드러났다. 시 주석의 말과 행동은 7개월 전 베이징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났을 때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발언록을 보면 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핵심 이익에 관한 문제에서 서로 유력하게 지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너무나 원론적인 발언이다. 푸틴 대통령이 가장 듣고 싶어 했을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발언은 한마디도 없다. ‘핵심 이익 유력 지지’라는 표현도 지난 2월 베이징 정상회담 때와 비교하면 톤이 낮아졌다. 시 주석은 당시 “중·러 양국은 초심을 굳건히 지키며 시종일관 믿음직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쌍방은 각국의 핵심 이익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상호 신뢰는 날로 공고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양국 우호에는 한계가 없다’는 내용이 담긴 200자 원고지 50장 분량의 공동성명도 냈다.
냉담했던 시 주석과 달리 푸틴 대통령은 절박해 보였다. 베이징 회담 때 “중·러 관계는 21세기 국제 관계의 모범”이라고 극찬했던 푸틴 대통령은 이번 우즈베키스탄 회담에서도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며 양국 우호와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러 외교 정책을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 ‘탠덤’에 비유하며 “국제사회와 지역 안정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확실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타스통신이 공개한 푸틴 대통령 발언 중엔 의미심장한 내용도 있다. “약 6개월 전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시 주석을 마지막으로 만났고 그 이후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대목이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베이징 회담 후 20일이 지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 대통령이 사전에 시 주석에게 침공 계획을 알렸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알렸다면 이 말은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를 적극 지지하지 않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만 표시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중국의 질문과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 주석으로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3연임을 확정할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러시아와 밀착해 미국을 자극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당 대회를 순조롭게 치를 수 있도록 대내외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할 때다. 그렇다고 러시아와의 공조를 느슨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장기 집권에 들어선 시 주석이 대만 통일을 시도한다면 그때는 러시아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로를 믿지 않고 공유하는 가치도 없어 동맹이 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어찌 됐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중·러 간 신냉전 구도는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도 정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중국과는 사드(THAAD)와 공급망 관리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안고 있다.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영향력이 크다.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국들과의 연대 강화와 함께 실리도 챙겨야 할 때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