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끝났다. 금세기 인류가 한 나라의 군주 장례식에 이토록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영국 BBC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엄수된 장례식을 잠깐이라도 시청한 이들은 영국에서 2800만명, 미국에서 1000만명 이상 등 전 세계 79억 인구 중 수십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방송을 통해서였지만 세기의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영국을 달리 생각하게 됐다. 영국인들은 자신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여왕의 죽음 앞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애도를 표했고 여왕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시민들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몸가짐은 자못 부러울 정도였다. 왕실과 의회 그리고 교회의 조화가 돋보였고, 이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국민을 연합하게 만든 힘이었다.
장례예배 당일 오전까지 관이 머물러 있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보여준 영국인의 조문은 매우 놀라웠다. 여왕(queen)의 영어 철자와 비슷한 대기 행렬인 큐(queue)에서도 품격이 넘쳤다. 30시간에 달하는 대기 행렬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그랬고, 조문객 중 일부가 목례나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장면도 신기했다. 그런 인사법은 서양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왕정 시절 군주가 길을 지날 때 예를 표하던 관습이 되살아난 것처럼 보였을 정도다.
무엇보다 압권은 왕의 지위가 보여주는 화려함과 그 상징물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유럽 왕들의 모습은 중세시대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 또는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을 통해 왕의 실제를 만날 수 있었다. 화면에 비치는 왕실 행사에서 유서 깊은 왕가의 단면이 드러났다.
왕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왕관과 홀(笏·sceptre), 보주(寶珠)가 그랬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운구된 여왕의 관 위에는 이 세 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왕관은 미인대회 우승자나 결혼식 신부가 쓰던 관이 아니었다. 여왕의 왕관은 1661년 찰스 2세가 대관식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순금 왕관에 루비 등 444개의 각종 보석이 박혀 있고 무게는 2.23㎏에 달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대관식에서 이 왕관의 무게로 놀랐지만, 무게만큼 자신의 의무도 크다고 생각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여왕은 이후 1.1㎏짜리 ‘제국 왕관’을 주로 착용했고 장례식 관 위엔 제국 왕관이 놓였다.
홀은 유럽 군주의 권력과 위엄을 나타내는, 손에 드는 상징물이다. 상아나 금속으로 만들며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식이 붙어 있다. 길이는 1m 이상이다. 보주는 왕권의 표장으로 십자가가 설치돼 있다. ‘레갈리아’라 칭하는 이 세 가지는 유럽 왕들의 상징이었고 모든 군주가 독점적으로 보유한 특권이자 그 권리의 표상이었다.
영국 군주를 마냥 찬탄하는 것은 아니다. 여왕이 보여주는 ‘왕 됨’을 통해 또 다른 왕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왕은 한국인뿐 아니라 온 세계인을 지배한다. 이 절대 권력에겐 왕관의 무게에 합당한 의무감이나 신민(臣民)에 대한 섬김과 자비도 없다. 그의 왕관은 지상 최고의 통치권을 상징하며 그의 홀은 폭군의 채찍이다. 보주는 이 세상 통치자로서의 지위를 표징한다. 바로 돈 권력 섹스 명예 탐욕이라는 왕이다. 온 세상은 이 절대 군주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왕 중의 왕이 있다. 그분은 헨델의 ‘메시아’가 찬미하는 ‘왕의 왕, 주의 주’이다. 그분은 누구인가. 영국 국가(國歌)와 똑같은 곡조를 가진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가 그 실체를 밝힌다. 왕의 왕은 우리의 괴로움과 환란 속에서 피난처가 되신다. 우리의 목소리가 되셔서 억울함을 대변하신다.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고 창과 검을 쓸데없이 만드신다. 그 왕은 자기를 낮춰 노예의 형체를 가지셨고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